[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억겹의 세월 버텨온 대청도

입력 2019-05-11 08:01  

[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억겹의 세월 버텨온 대청도

(인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백령도에서 8㎞ 남쪽에 대청도가 있다. 최근까지 대청도는 여행 목적지로 주목받는 곳이 아니었다. 백령도를 향했으면 향했지 여행자들에게 대청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백령도 여행에 끼워넣기 식으로 판매되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사실 대청도는 그런 대우를 받을 곳이 아니다. 볼 곳, 갈 곳, 먹을 것이 산재한 서해의 보물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



◇ '인생 트레킹' 코스 서풍받이

대청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트레킹이다. 대청도에 내리면 '삼서트레킹'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삼서트레킹(7㎞ 구간)은 해발 343m의 삼각산 등반과 서풍받이 트레킹을 줄인 말이다.
삼각산은 야트막하게 보이지만 코스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 2시간가량의 코스지만, 오르내림이 심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백령도와 그 너머 황해도가 한눈에 보인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각산 등산을 끝낸 뒤 섬 순환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는 서풍받이 코스에 도전한다.
대청도 남쪽 광난두 정자각에서 마치 곤봉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점으로 가면 그 마지막 지점에 서풍받이가 있다. 서풍받이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비경이다. 국내 웬만한 트레킹 코스를 다녀온 사람들조차 이 길에 들어서면 환호성을 멈출 수 없다.



서풍이 몰아치는 길 오른쪽의 나무들은 4월인데도 새순조차 나지 않는다. 오직 길 왼쪽에 있는 소나무만 푸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는 듯한, 말라비틀어진 나무 군락이 울창한 길도 매력적이다.
몇 차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서풍받이다. 서풍받이는 수직에 가까운 해안 절벽으로, 세찬 서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뒤쪽은 부드러운 풀밭이다. 이 광경은 마치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지역인 돌로미티의 '세체다(Seceda) 코스'와 닮았다.



서풍받이를 방문했을 때는 강원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양간지풍(襄杆之風)으로 화마가 강원도를 덮칠 때였다.
한반도 서쪽의 바람도 만만치 않아서 이날은 서풍받이의 진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갈 때는 몰랐지만 서풍받이에서 광난두 정자각으로 돌아오는 길은 3가지다. 원래 밟았던 서쪽 능선과 나무 한 그루 없는 가운데 초원길, 그리고 마당 바위를 통과하는 길이다.
풀이 가득한 초원길을 걸어 내려가니 '갈대원'이다. 그 앞 해변에 귀순자를 위한 전화가 설치돼 있다. 수화기를 들어 보니 '웅∼' 하는 수화음이 들린다. 귀순자들은 신호 버튼을 누르면 통화를 할 수 있다.



◇ 10억년 세월 버텨온 나이테 바위, 그리고 '미니 사막'

섬 북쪽에는 농여해변이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풀등이 있는 해변이다.
풀등은 모래가 쌓인 곳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을 말한다. 대이작도 풀등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그곳은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대청도 풀등은 썰물 때만 디딜 수 있다. 아쉽게도 이날은 물이 가득 차 갈 수 없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이테 바위다.
백령도와 대청도의 지질은 국내 최고(最古)인 10억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테 바위의 나이도 그와 비슷하다. 보통의 지층은 가로로 펼쳐져 있지만, 나이테 바위는 세로로 서 있다. 퇴적층이 강한 지층 운동으로 세로로 서버리는 바람에 이런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모래밭에 온통 널려 있는 크고 작은 나이테 바위들의 모습은 독특한 모양의 바위로 유명한 대만 예류 지역을 보는 듯하다. 때마침 저물녘에 나이테 바위 앞쪽에 물이 빠져나가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나이테 바위는 얼마나 많은 파도를 지켜봐 왔을까? 잠시 10억년 나이의 바위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아 봤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 앞에 선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농여해변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는 또 다른 절경을 선사하는 옥죽동 모래사막이 있다. 북서쪽 해안의 모래가 북서풍에 날려 형성된 '미니 사막'이지만, 해안사구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길이 1.6㎞, 폭 600m로, 충남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보다 더 크다. 이곳 모래사막에서는 낙타 몇 마리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모형이다. 주민들의 재치가 엿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주민들이 방풍림을 설치한 뒤 모래사막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방풍림을 없애 더 자연스러운 사막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옥죽동 사막 트레킹을 끝내면 솔밭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솔밭 인근 철조망 위에 내걸린 '지뢰'라는 팻말이 살짝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 원나라 순제가 유배된 섬

대청도는 인천에서 멀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가까웠나 보다. 고려 시대 때 이곳은 원나라의 황태자나 세자들의 귀양지였다.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1260∼1294)의 여섯째 아들 등이 대청도로 유배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기황후의 남편)는 왕자 시절 이곳으로 귀향을 왔다고 한다.
순제가 거처했다는 태자궁 터로 추정되는 대청초등학교 운동장 북쪽 산자락에서는 2006년 기와 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순제의 흔적은 대청도 이곳저곳에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적송 군락이 있는 섬 서쪽의 모래울 해변이다. 순제는 이 해변을 산책하다 이곳 소나무를 보고 '기린송'(麒麟松)이라 불렀다고 한다. 기린은 사슴 형상에 뿔이 있고 전신이 비늘로 덮여 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기린의 비늘과 같은 소나무를 기린송이라 불렀고, 기린송이 아들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길이 1㎞, 폭 500m의 모래울 해변에는 수령 200년 이상의 적송이 즐비하다. 적송은 그야말로 낙락장송이다. 한그루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래울 해변은 모래질이 단단하고 보드라워 맨발로 걷기에 그만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참호

모래울 해변의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는 건물 앞에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가면 말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적송이 자리 잡은 해변 위쪽에 장병들이 야간 근무를 서는 참호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참호'가 아닐까 싶다.
이곳 풍경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 적송이 우는 소리와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듣노라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모래울 해변에서 북쪽으로 차로 5분 거리에는 지두리 해변이 있다. 해변에는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방갈로가 마련돼 있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고 한다. 지두리 해변은 성수기에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다. 이곳에서는 간단한 조리가 가능하지만 야영은 금지돼 있다. 화장실과 샤워장 이용은 무료다.

◇ 국내 어획량 절반 차지했던 홍어의 산지



대청도가 홍어의 주산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어는 흔히 호남에서 잡히는 어류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대청도는 국내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홍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대청도 주민들은 잡은 홍어를 삭혀 호남 지역에 내다 판다. 하지만 대청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먹는다. 1970년대에 대청도의 홍어잡이 어선은 최대 150대에 달했지만 지금은 10%가량만 남아서 조업하고 있다.
홍어잡이 일꾼을 구하기 힘들어서다. 홍어잡이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배 한 척에 일꾼 4∼5명이 있어야 하는데, 일꾼들에게 돈을 주고 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대청도에서 홍어를 잡을 때는 미끼를 끼우지 않는 ㄷ자 모양의 바늘이 400여개 정도 달린 낚싯줄을 풀어 놓는다. 여름에 2∼3일, 가을에는 3∼4일 후 줄을 풀어 놓은 곳에 가보면 홍어가 걸려 있다.
이렇게 잡는 홍어는 한 번에 40∼50장 정도다. 대청도에서는 홍어를 세는 단위로 '장'을 쓴다.
일제강점기에 대청도 선진 포구에는 일본 포경선단이 자리 잡기도 했다. 포경선은 멀리 중국 해안까지 나가 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 자연산 해산물이 있는 먹거리 천국

대청도는 백령도보다 먹을 것이 훨씬 풍부하다. 백령도는 엄밀히 말해 지형이 평지에 가까워 농사가 발달했다. 즉 바다 위에 떠 있는 농업지대인 셈이다. 이에 비해 대청도 인근에는 각종 어류가 많이 잡힌다.
지금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팔랭이(간자미의 대청도 방언)다. 가게마다 '팔랭이 회', '팔랭이 매운탕' 등을 써 붙여 놨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또 다른 주메뉴는 홍합이다. 이곳에서 파는 홍합 관련 음식은 대부분 자연산이다.



점심으론 아귀와 팔랭이를 함께 넣은 매운탕을 먹었는데 역시 신선한 재료에서 우러나는 맛이 일품이었다. 점심은 '우체국 추천 맛집' 마크가 붙어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선진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저녁으로는 홍어회를 시켰다. 귀하디귀한 홍어를 그것도 회로 먹는 호사라니….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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