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을 꿈꾸는 21세기 여자 '햄릿'…연극 '함익'

입력 2019-04-12 18:02  

줄리엣을 꿈꾸는 21세기 여자 '햄릿'…연극 '함익'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2∼28일 공연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휘몰아치는 감정을 겨우 억누른 채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앞에 여자가 아닌 다른 존재가 비친다.
그는 바로 여자의 분신인 '익'.
여자와 분신은 절규하고, 슬픔에 몸부림치며 서로 끌어안았다가 다시 밀어내는 등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무대 위에서 완벽한 호흡의 춤을 춘다.
온통 검은색으로 자신을 감춰버린 여자는 '익' 앞에서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자신 내면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서울시극단이 1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창작극 '함익'은 2016년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기를 맞아 고전 '햄릿'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창작한 연극이다.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아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400년 전 어머니의 배신에 고통받으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친 햄릿은 '함익'에서 21세기 아버지에게 복수를 꿈꾸는 한국 여성 '함익'으로 재탄생했다.
재벌 마하그룹의 외동딸로 태어난 함익은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다.
자살한 친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한테 살해됐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품고 살아 외부인과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대학교수인 함익은 학생들의 '햄릿' 공연에 파수꾼 버나드 역으로 참여한 연우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함익은 연우가 햄릿 역을 맡게 일을 꾸미고 극 내용도 자기 입맛에 따라 바꿈으로써 '햄릿' 공연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번 공연은 제목이 '함익'인 만큼 '함익' 역을 맡은 배우 최나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함익' 역을 맡은 최나라는 12일 진행된 프레스콜 전막 시연에서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진 함익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최나라는 "함익이 가면을 쓰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고독한 삶을 살지만, 그 안에서도 좀 더 섬세함, 유연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함익과 익이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면의 아픔을 분출하는 장면은 마치 한편의 세련된 무용극을 보는 듯 아름답다.
연우가 햄릿 연기를 연습할 때 감정이입을 한 함익이 그와 함께 대사를 읊는 장면에서는 마치 완벽한 화음을 자랑하는 한편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를 장악하는 최나라의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지만 다른 배우들도 그에게 압도되지 않고 때론 정면으로 충돌하며, 때론 부드럽게 안아가며 무대를 완성했다.
김광보 연출은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하고 어떤 교감을 주고받느냐, 앙상블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대사의 답은 앞뒤 대사에 있다는 것을 연습 내내 강조했고 배우들도 잘 따라와 줬다"고 돌아봤다.
'함익'에서는 학생들의 '햄릿' 공연 준비를 통해 햄릿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소개한다.
주로 연우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햄릿은 복수를 앞두고 결정을 못 내리는 우유부단한 왕자가 아니라 각자의 문제로 고민하는 일상의 우리로 그려진다.
김은성 작가는 "원작에서 '햄릿'은 인간이 가질 법한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상징되는 원작의 무거움을 깨고 싶었다"며 "겉은 남성적이지만 그 심리는 매우 여성적이라고 느꼈고, '함익'에서는 햄릿이 가졌을 법한 이면의 심리를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채 신발을 벗어놓고 죽음을 향해가는 함익의 마지막 장면은 생각보다 쓸쓸하지만은 않다.
억압과 고통뿐이었던 삶에서 해탈할 마지막 방법을 찾은 그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해 깊은 울림을 준다.
최나라는 "극 중 연우가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데 복수가 실패하면서 함익이 자신이 살아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진정한 해탈의 의미로 죽음을 택한 것 같고 나 또한 그렇게 연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긴장감이 이어지는 것이 중요한 연극인 만큼 속도감 있게 장면을 전환하도록 무대를 앞뒤로 활용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함익이 죽음을 향해 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스쳐지나가는 지난 기억들을 배우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모습으로 그려낸 장면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독특한 개성과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배우 이지연이 함익의 분신인 '익' 역을 맡았다.
함익 내면을 흔드는 '연우' 역에는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배우 오종혁과 조상웅이 더블 캐스팅됐다.
지난달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배우 강신구가 함익 아버지 '함병주' 역을 맡아 함익 내면을 점점 병들게 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티켓가격은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이다.
세종문화티켓, 인터파크티켓 등에서 예매한다. 문의는 세종문화티켓(☎ 02-399-1000).


bookman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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