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맞은 '비밀정원' 성락원…"인공이 자연을 넘지 않는 곳"

입력 2019-04-23 17:30   수정 2019-04-24 15:18

관람객 맞은 '비밀정원' 성락원…"인공이 자연을 넘지 않는 곳"
"명승 지정 이후 관리 제대로 받지 못해…물질 아닌 정신적 공간"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서울 성북구 번잡한 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 쪽으로 방향을 틀면 호젓하게 자리 잡은 카페와 식당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거리가 나온다.
오르막길로 향하다가 간송미술관에 이르기 전 오른쪽 골목으로 빠져 길 끝까지 오르면 검은 대문을 걸어둔 성락원(城樂園)이 나타난다.
1790년대 처음 조성돼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 일반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었던 서울 도심의 '비밀정원'이다.

그런 성락원이 23일 관람객을 맞았다. 이날부터 6월11일까지 한시적으로 개방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성락원의 대문 옆 쪽문이 열렸다. 쪽문을 지나면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제법 깊이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두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해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는 글자가 암벽에 새겨졌다.


담 너머 주택단지와는 전연 다른 풍경이었다.
내원 쪽으로 가려면 샛길을 따라 조금 둘러가야 했다.
안내를 맡은 한국가구박물관 박중선 이사는 "정문에서 내원 쪽이 바로 보이지 않게끔 '용 머리 모양의 가짜 언덕'(용두가산·龍頭假山)을 일부러 쌓아 올려 공간을 분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두가산을 지나니 연못 '영벽지'(影碧池)가 나왔다. 연못으로 향하는 물줄기는 커다란 바위를 타고 내려와 낙차가 1m는 넘을 듯한 폭포의 모습을 띠었다.
박 이사는 "지금은 가뭄이라 물줄기가 약하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영벽지 바위에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글씨가 음각으로 남아 있다. 연못 안에는 사각형 윗부분이 둥글게 움푹 파인 모습의 석조물이 있는데 아직 그 의미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영벽지에서 더 위로 오르면 성락원의 끝자락에 도달한다. 송석정(松石亭)이라는 누각이 나타난다.
박 이사는 "송석정은 1953년에 지어진 것"이라며 "송석정 앞의 연못인 송석지 둘레를 콘크리트로 막아서 물을 가둬놓은 점 등을 볼 때 경회루를 떠올리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석정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듣다가 뒤를 돌아보니 시야 아래쪽으로는 영벽지를 향해 흐르는 물줄기와 바위들, 위쪽으로는 수목 사이 저 멀리 남산타워가 단번에 들어온다. 송석정의 주인이 누려온 절경이다.



박 이사는 "남산을 바라보고 뒤로도 산이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라며 "한국 조경에서 중요한 요소인 '차경'(借景)과 인공이 자연을 넘지 않는 모습이 바로 (남산을 바라보는) 이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차경은 '경치를 빌려온다'는 정도의 뜻으로 풀이된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아름다움을 인간의 안목과 부지런함으로 발견한다는 것인데, "집을 자연에 살포시 앉힌 것"이라고 박 이사는 표현했다.
그는 "외국 분들을 담양 소쇄원 같은 곳에 데려가면 '정원이 어딨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서양의 정원은 굉장히 말끔하다"며 "(소쇄원, 성락원 등 한국 정원은) 물질적으로 화려하게 꾸민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간"이라고 부연했다.
현재 성락원은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풀이나 나무 한 포기 제대로 옮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이사는 "사람으로 치면 세수, 이발, 면도 한 번 못한 모습"이라며 "지금은 한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성락원은 16,000㎡ 규모로 1790년대 황지사라는 인물이 처음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들어 철종(재위 1849∼1863)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정원으로 사용됐고, 일본강점기에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저로 썼다. 의친왕이 기거한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심상응의 후손인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1950년 4월 사들였다.
서울 안에 있는 몇 안 되는 별서(별장) 정원이고 풍경이 잘 보존돼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됐다가 2008년 명승 제35호로 다시 지정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국내 3대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瀟灑園), 완도 보길도 부용동(芙蓉洞)과 성락원을 꼽는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아 심 회장이 지었다고 한다.
관람은 한국가구박물관에 사전예약해야 하며 관람료는 1만원이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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