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의 산실 '녹두서점' 가족 이야기

입력 2019-05-03 14:10  

5·18민중항쟁의 산실 '녹두서점' 가족 이야기
김상윤씨 등, 책 '녹두서점의 오월'로 당시 기억 불러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다시 5월이 왔다. 이달이 되면 광주 시민들은 지독한 '5월 앓이'를 한다. 뭔가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39년 전에 겪은 고립과 폭력, 분노와 낙인이 살아남은 자들을 여전히 괴롭힌다.
광주에는 30여 곳의 5·18사적지가 있다. 10일간 이어진 항쟁에서 결정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 그중 하나가 전남도청 인근의 '녹두서점'이다. 항쟁의 최후 거점인 전남도청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아픔의 공간. 헌책방에서 시작해 1981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기까지 4년 남짓 운영됐지만 5·18항쟁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작 15평 조그마한 책방은 고립된 광주 시민들에게 대자보와 전단을 만들어 정보를 전달한 상황실이자 항쟁 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간이식당이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1980년 5월 27일)을 비롯한 지도부가 항쟁 방향에 대해 치열한 논의를 이어간 회의실이기도 했다.



이 녹두서점 일가족이 자신들의 눈으로 본 80년 오월을 생생히 증언해주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서점 주인 김상윤(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씨와 아내 정현애(오월 어머니집 이사장) 씨, 남동생 김상집(5·18구속부상자회 광주지부장) 씨다. 유신정권 반대를 외치다 전남대에서 제적당한 상윤 씨는 광주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인 녹두서점을 차려 당시 금서로 지정된 서적들을 제공하며 대학생과 시민들에게 지적 수원지 역할을 했다.
이들 저자는 다른 광주시민들처럼 5월만 되면 그때 겪은 고문 후유증이 도지며 온몸에 발진이 돋고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린다. 국가공식기념일인 5·18기념식에도 가보지 못했다. 이번 책은 40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집필한 것으로, 출간 동기와 배경을 이렇게 밝힌다.
"우리 가족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 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5·18항쟁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상황은 두 가지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을 현재까지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군부독재부터 이어져 온 지역 모순과 차별을 끈질기게 부추기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한 가족 세 식구가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각각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저 김상윤 씨. 대학 제적 후 그가 운영한 녹두서점은 군부 정권에게 '불온'한 공간일 뿐이었다. 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움켜쥔 전두환 신군부로선 '광주 사태' 진압을 위해 미리 손을 써둬야 할 곳 중 하나였다. 5월 17일 자정께, 김씨는 총을 들고 서점에 들이닥친 대공과 형사들에게 붙잡혀 505보안부대 지하실로 끌려간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당한다.
1977년 녹두서점을 찾았다가 그 인연으로 주인인 김씨와 결혼한 정현애 씨는 남편이 지프차에 실려 어두운 밤거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홀로 지켜보며 공포에 떨었다. 5·18 이후 녹두서점 살림을 도맡은 정씨는 자신처럼 갑작스레 남편이 구속된 부인들, 서점을 찾은 학생·시민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시간대별로 상황일지를 기록한다. 항쟁과 함께 녹두서점은 시민 상황실로 변모해 있었다.
김상집 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가 항쟁과 동시에 윤상원의 호출로 시민군 대열에 합류했다. 광주 하늘에는 불과 보름 전 자신이 속해 있던 부대가 운용하는 500MD 헬리콥터가 마구 날아다니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엄군이 착검한 총으로 시민들을 무차별 살육하는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이들은 감옥(김상윤)과 서점(정현애), 거리(김상집)라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자신들이 겪은 항쟁 열흘간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그 과정과 에피소드, 항쟁지도부와 기층민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항쟁에 뛰어든 사람들이 '빨갱이, 폭도, 극렬분자'라는 낙인과 무차별 폭력에 맞서 싸움으로써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려 했던 치열한 몸부림을 세 사람의 시선을 통해 하나하나 돌이켜보게 한 것이다.
녹두서점을 중심으로 이들 가족의 활동 궤적을 한곳에 모으면 5·18항쟁의 전 과정과 핵심 활동이 축소판처럼 드러난다. 더불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구속자 가족의 항쟁 이후 노력도 상세히 다뤘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추천사를 통해 "녹두서점의 가족들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광주 5월'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며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삶을 소망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에 나서게 되었는지 소상히 밝혀주는 기록이자, 5·18항쟁을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다. 이들 가족이 겪었던 시대의 깊은 상흔도 이 글을 기록함으로써 치유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한겨레출판 펴냄. 352쪽. 1만6천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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