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라가 세운 첫 동상'…조명하 의사 후손들의 눈물

입력 2019-05-11 13:43   수정 2019-05-12 11:15

'이제야 나라가 세운 첫 동상'…조명하 의사 후손들의 눈물
30여년전 서울대공원 동상 설치땐 후손들이 제작비 도맡고 온갖 어려움
조 의사 장손, 고국에 상처받고 호주 이민까지…"할아버지 기억해주길"



(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1일 오전 대만 타이베이의 한국학교 교정.
동상을 감싼 흰 천이 천천히 벗겨지면서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단검으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육군 대장 척살에 나섰던 조명하 의사(1905∼1928년)의 당당한 모습이 드러났다.
힘껏 손뼉을 치는 참석자들 속에서 만감이 교차한 듯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스물셋 젊은 청년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을 바라보는 장년의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는 조 의사의 장손인 조경환(63)씨였다.
오늘 처음으로 새 동상의 모습을 본 조씨는 "눈물이 나네요"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으로 나랏돈이 지원돼 만들어진 조 의사 동상을 바라보면서 조씨는 온갖 어려움 끝에 지난 1988년 서울대공원에 할아버지의 동상을 세웠던 서러운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최근 들어 조 의사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지만 유일한 혈육인 조혁래(2017년 작고)씨와 손자 경환씨 등 유족은 그간 '잊힌 영웅'인 조 의사를 기리는 선양 사업을 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재를 털어 가며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조 의사 동상은 국내에 있는 유일한 조 의사의 동상이다. 당시 조혁래씨와 아들 경환씨는 백방에 호소한 끝에 서울대공원에 조명하 의사의 동상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웬만한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 이상이던 조성 비용은 모두 조 의사 후손들이 부담했다. 동상 설치를 위한 '사례금'으로 동상 제작·설치비보다 더 많은 돈을 건넬 수밖에 없던 부조리한 현실도 있었다고 한다.



조씨는 "오래전 서울시는 지금 돌아보면 복마전 같은 곳이었다"며 "이것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도와 할아버지 기념사업을 하면서 못 볼 모습을 너무 많이 보면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죄인인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고 당시를 돌이켰다.
서울대공원 동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조씨는 큰 절망감에 빠졌다. 이후 그는 이민을 결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동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너무나 가슴 아픈 얘기가 많았어요. 그때 제가 아버지께 '할아버지가 왜 이런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이민을 하겠다고 했어요. 어째서인지 아버님께서는 '그래 가라'고 허락하셨어요."
아픈 기억을 남겨준 조국을 등졌던 조씨는 2년 전 부친 작고 뒤에는 부친이 짊어졌던 조명하 의사 기념사업이라는 무거운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이후 아버지 조혁래씨가 걸어간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조씨는 거주 중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국과 대만을 수시로 오가면서 조 의사 기념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포기했던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 등 뜻 있는 학자들이 결성한 조명하의사연구회의 회원들도 경환씨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기적인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조씨는 "기념사업을 하시기 위해 지은 죄도 없이 50년, 60년을 주변에 굽실거리고 사셨던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지만 저 역시 큰 사업은 아니더라도 후세에 부끄럽지 않도록 할아버지 기념사업을 계속해 나갈 작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우리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하나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해주는 것.
"'꽃보다 할배' 방송 이후로 많은 젊은이가 대만을 찾고 있는데 애국심 강한 우리 젊은이들이 조명하 의사를 안다면 대만의 의거 현장이나 순국지를 가보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 우리 유족이 앞서 알리는 일을 할 테니 관광공사 가이드북에 관련 내용을 넣어주는 등 나라 역시 할 수 있는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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