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안깨려는 트럼프, 김정은에 "신뢰 위반 아냐" 어르고 달래기

입력 2019-05-11 23:58  

판 안깨려는 트럼프, 김정은에 "신뢰 위반 아냐" 어르고 달래기
"매우 심각하게 주시" 강대강 대치 하루만에 수위조절…추가도발 차단 포석
'실험중단 치적' 타격 최소화 상황관리…"신뢰위반시 알리겠다" 레드라인 경고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 '신뢰 위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며 "단거리 미사일들이었고 심지어 일부는 미사일이 아니었다"며 '의미 축소'에 나섰다. 미 국방부가 언급한 '탄도 미사일'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전날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실망감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경고 사인'을 준지 하루 만에 '톤'을 낮추며 다시 '어르고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뒤이은 미국의 북한 선박 압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강 대 강 대치'로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다.
5일 간격으로 이뤄진 북한의 잇따른 발사에도 불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여전한 신뢰를 표명하는 것으로 '톱다운 대화'의 문을 열어둠으로써 '추가 도발' 등 북한의 궤도이탈을 막으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판을 깨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강온병행'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아직'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에는 "신뢰 위반"으로 판단하게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경고장도 던졌다. 북한의 압박 강화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원칙론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의 행동에 따라 언제든 강경 기조로 다시 선회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방부가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쐈다고 확인했는데, 당신과 김정은 간의 신뢰 위반(a breach of trust)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일로 인해 화가 나거나 좌절해 있는가. 우리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들은 단거리이다"라며 "그것들은 단거리이며, 나는 이를 신뢰 위반으로 전혀 간주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느 시점에는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것들은 단거리 미사일들이었으며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 매우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 데 대해 자랑스럽다고 언급해왔는데, 이번 일을 그에 대한 '역행'으로 간주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글쎄…그것들 중 일부는 심지어 미사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사한 것들의 일부는 심지어 미사일이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이어 "그러나 이것은 단거리이고, 나는 신뢰 위반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내가 신뢰 위반으로 간주하게 될 때가 되면 알리겠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4일 '하노이 노딜' 이후 첫 발사체 발사가 이뤄졌을 당시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며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우리 정부의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 '채찍' 대신 '당근'을 내밀었다.
그러나 북미 협상의 미국 측 실무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방한 중이던 지난 9일 북한의 발사가 5일 만에 다시 이뤄지자 미국 측의 대응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1차 발사 당시만 해도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북한에 대한 자극적 언사는 자제했지만,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그동안의 낙관론을 거둬들이는 듯 했다.
같은 날 미 법무부는 북한 석탄을 불법 운송하는 데 사용돼 국제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를 압류했다는 사실을 전격으로 발표하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교롭게 미군의 ICBM과 SLBM 시험발사도 이날 이뤄졌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1차 발사 당시에는 발사체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형·단거리 미사일'이라고 언급한 데 이어 국방부가 '탄도 미사일'이었다고 밝혔다.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던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다시 수위조절을 나서며 신중론을 견지한 데는 그가 그동안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최대 외교 실적으로 꼽아온 가운데 자칫 대북 외교의 실패를 자인해야 하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는 당장 재선 가도에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의 발사에 대해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면서 일부는 미사일이 아니었다며 파장을 경계하고 나선 것도 미 본토에 위협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국내적 역풍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미사일 실험 중단 성과가 타격을 입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다만 미 조야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로키'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북한의 추가 도발 빌미를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행동이 아직은 '신뢰 위반'이 아니라며 김 위원장에게 다시 '올리브 가지'를 내밀긴 했지만, 북한이 제시한 '연말 시한'에 쫓겨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 미국이 성급히 협상 테이블에 앉지는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다니지 않고 '빅딜론'을 고수, 최대 압박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뜻인 셈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10일 방영된 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지금 당장 협상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우리는 계속 굳건히 서 있을 것"이라며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며 '상황관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북한이 대미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갈 경우 다시 강경 드라이브로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일 북한 선박 압류와 ICBM·SLMB 시험발사 등을 통해 북한이 선을 넘을 경우 언제든 '실력행사'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낸 바 있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으로 의회 등 미 조야의 강경론이 한층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한층 좁아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방한 기간 내내 극도로 말을 아꼈던 비건 특별대표가 3박 4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름에 따라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특히 인도적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최종 어떤 식으로 기조를 정했는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hanks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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