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프랑스 '최고장인' 조용덕씨

입력 2019-05-14 07:00  

[인터뷰] "책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프랑스 '최고장인' 조용덕씨
파리서 20년 가까이 예술제본 '외길'…재수 끝에 프랑스 최고장인 선정
하루 종일 책만들고 돌아오는 집도 佛 국립도서관 앞…"책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13일 마크롱 대통령의 엘리제궁 초청받고 '셀카' 함께 찍기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오브제(objet·대상)로서의 책이 너무 좋아요. 책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예술제본은 프랑스에서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린 일이라 일도 끊이지 않고 들어오지요."
프랑스 파리에서 20년 가까이 수작업으로 한땀한땀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제본사' 조용덕(44)씨는 두 번의 도전 끝에 이번에 프랑스 최고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MOF)의 영예를 안았다.
MOF는 1924년부터 프랑스 교육부·노동부 주관으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프랑스의 장인(匠人) 콩쿠르로,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프랑스 국가공인자격증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제본 분야의 MOF로 선정된 조 씨는 이번에 아이스크림 분야의 김영훈(38) 씨와 함께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MOF를 거머쥐는 경사를 안았다.
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작년 12월에 M0F 선정 소식을 듣는 순간 그동안 파리에서 책에 파묻혀 지내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13일에는 파리 소르본대에서의 시상식에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엘리제궁 리셉션에 초청을 받아 제2의 조국인 프랑스의 대통령과 '셀카'를 찍는 기쁨도 누렸다.
조씨는 한국에서 원예학과를 졸업한 뒤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던 중 예술제본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보는 순간 빠져들었어요. 독서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책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습니다. 책에 가죽옷을 입히고 금박 장식을 하고 색실을 꿰매 넣고 하는 수작업을 통해 그동안 제가 배운 것들을 모두 표출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도제식 교육을 받고 공방에서 일하면서 예술제본, 또는 고서제본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일하다 보니 어느새 프랑스 생활이 20년 가까이 흘러버렸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책의 장정 등 외관을 꾸미고 책 자체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이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다.
"지금도 '제본'이라고 하면 대학가 앞에서 불법 복제인쇄물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주는 일을 흔히 생각하잖아요. 제본(製本)은 일본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제책'(製冊)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전자책과 스마트폰의 위세에 종이책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듯도 하지만 일감은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제 고객들은 주로 소장한 좋은 책들, 오래전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준 특별한 가치를 지닌 책이 낡으면 새로 장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거리가 없어서 못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파리 13구의 제본 공방에서 온종일 공들여 책을 만들고 나서 돌아오는 집도 센 강변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BNF) 코 앞이라 그는 말 그대로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있다.
"BNF가 집에서도 아주 가깝고 또 고서복원실장도 저의 가까운 친구예요. BNF에는 워낙 오래된 책이 많아서 고서를 복원하는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지요. 천년이 넘은 책을 친구들이 손으로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을 보면 같은 분야 종사자로서 참 경탄스럽습니다"
종이책을 만드는 공예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종이책의 미래를 물어봤다.
"걱정은 하지 않아요. 전자책이 주는 신선함과 편리함이 있기는 하지만, 종이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항상 있거든요. 최근에는 오히려 제가 일하는 분야가 프랑스에서도 되살아나고 있어요"
조씨는 오늘도 파리 변두리의 공방에서 동료들과 함께 낡은 종이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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