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abroad] 낭만이 부유하는 피오르의 관문

입력 2019-06-12 08:01  

[travel abroad] 낭만이 부유하는 피오르의 관문

(베르겐=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터키 이스탄불 경유편을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로 가던 4월 하순의 하늘길. 지구촌 곳곳을 여행했다는 옆자리의 핀란드인 중년 남성은 "피오르를 보러 노르웨이에 간다"는 기자의 말에 "피오르도 멋지지만 북쪽으로 좀 더 가면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로라 제철이 이미 지났지만,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라고도 했지만, 그 황홀경을 볼 수도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6일 동안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로라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그것도 유명 피오르 지대에서 한참이나 북쪽에 있는 트롬쇠(Tromsø)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었다.
노르웨이 하면 실상 아는 게 별로 없다. 바이킹의 후예가 사는 땅, 수도는 오슬로고, 오로라 국(國)이며, 피오르가 있다는 정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지만 한턱냈다가는 집안 기둥이 뽑힐지도 모를 살인적인 물가(物價)도 있다.
199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릴레함메르도 들어봤을 듯싶다. 물론 그곳이 노르웨이의 도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한국과 꽤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 때 의료병력이 파병돼 부상병을 치료했다. 또 지금 우리가 먹는 수입 고등어와 연어의 절반 정도는 노르웨이산(産)이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가장 많이 딴 동계스포츠 강국이기도 하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토르(Thor)는 노르웨이 최고신(神)이기도 하다. 또 피오르 도시인 베르겐(Bergen)과 발레스트란(Balestrand)은 '겨울왕국'의 배경이 됐다.



◇ 오래됐지만 산뜻한 브뤼겐

오슬로에서 서쪽으로 470㎞ 떨어진 베르겐은 피오르 여행의 관문이다. 노르웨이어 피오르(Fjord)는 '내륙 깊이 들어온 만'이란 뜻으로, 빙하가 깎아 만든 U자형 골짜기에 바닷물이 유입한 좁고 기다란 지형을 말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노르웨이의 서해안이 피오르 지대고, 그곳에 베르겐이 있다.
봄이 찾아온 인구 28만 명의 도시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화사한 벚꽃이 거리를 분홍빛으로 장식하고, 초록빛 잔디 깔린 공원에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항구 주변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에선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어시장은 분주했다.
항구와 인접한 베르겐 최고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브뤼겐(Bryggen)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삼각형의 뾰족한 박공지붕을 얹은 4층의 고만고만한 목조건물 10여 채가 바다를 향해 어깨를 마주한 곳. 빨강, 노랑, 하양, 갈색 등 단정하게 색칠된 건물들은 무척 산뜻해 보였다.
이 건물들은 1360년부터 약 400년간 독일 상인들이 보관창고이자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들이다. 당시 유럽의 상업 도시들은 해상교통의 안전을 보장받고 상권을 확대하기 위해 독일 주도로 한자(Hansa)동맹을 맺었다. 베르겐도 한자동맹 참여 도시 중 하나였다. 베르겐이 대구의 집산지이자 수출항으로 번성하자 독일 상인들이 이곳에 목조건물을 짓고 해외지사 겸 물류창고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목조건물들은 화재에 취약해 수차례 화마에 휩싸였다. 1702년에는 모든 건물이 잿더미가 됐고 이후 재건축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불에 타면서도 목조를 고집한 것은 독일 상인들의 전통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 그들에게는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설계도가 있었다고 한다. 비록 건물은 300년쯤 됐지만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화사한 빛깔의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한쪽으로 살짝 기운 것을 알 수 있다. 문도 진열장도 직사각형을 이루지 못하고 살짝 마름모꼴이다. 건물이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대구와 건어물, 곡식으로 가득했던 창고는 근대 산업화에 따라 용도를 잃어갔다. 현재 건물들은 기념품점, 펍, 호텔,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변신했다.
햇살 화창한 날이면 건물들 앞 광장에 놓인 탁자는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가득 들어찬다. 작은 맥주 한 잔(약 330㎖)에 1만2천원이나 하지만 따스한 햇볕 아래서 낭만적인 항구와 브뤼겐의 풍경을 감상하며 즐기는 맥주의 맛은 시원하고 감미롭기만 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으로 들어서자 목재 마루가 깔린 어둡고 좁은 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목조건물이 빼곡한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 건물들과 달리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사들의 쇼핑가인 다이애건 앨리처럼 마법사들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한쪽에는 한자상인회관(Hanseatic Assembly Room)으로 사용된 건물이 있다. 당시 상인들은 이곳에서 식사하고, 연회를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여흥을 즐기고, 법적인 소송을 하고, 종교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상인회관 북쪽에는 12세기에 건축된 석조 건물인 성 마리아 교회(St. Mary's Church)가 있다.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측면에서 보면 겹겹의 아치가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띤다. 하지만 정면은 탑 2개가 높이 솟은 고딕 양식이다.
브뤼겐에서 북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한때 노르웨이의 수도였던 베르겐을 방어하기 위해 13세기 중반 건설된 베르겐후스(Bergenhus) 요새에 닿는다. 요새에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 2동이 있다. 왕궁의 일부로 사용된 로젠크란츠(Rosenkrantz) 타워와 왕의 거주지이자 연회장이었던 호콘 홀이다. 호콘 홀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폭파돼 1957년 재건되기도 했다.



◇ 군침 도는 해산물 천국 '피시 미'

발길을 돌려 돌아온 항구. 항구에서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피오르로 가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아드는 이곳에는 베르겐의 보통 건물과 비교해 도드라져 보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2층 건물이 있다.
건물 2층은 관광안내소, 1층은 수산시장이다. 수산시장의 이름은 '피시 미'(FISH ME·'나를 낚아!'라는 뜻). 재치있는 상호에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곳 수산시장은 싱싱하고 꿈틀거리는 해산물이 가득한 우리의 노량진수산시장이나 자갈치시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장이라기보다 백화점 수산물 코너 같은 느낌이다. 투명한 유리 진열대 안에 해산물이 진열돼 있고, 살아 있는 것은 없다. 연어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생선을 회로 먹지 않기 때문이다.
진열대에는 커다란 송어를 비롯해 대구, 청어, 고등어, 새우, 바닷가재와 민물 가재, 가리비, 굴, 성게, 킹크랩 등 해산물이 가득하다. 훈제하거나 양념한 물고기도 있고, 말린 생선은 줄에 주렁주렁 걸려 있다.
기념품으로 인기가 높은 대구 알도 있다. 노르웨이인들은 치약 같은 용기에 담긴 대구 알을 빵에 바르거나 스파게티에 넣어 먹는다. 맛이 짭조름하고 고소해 빵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한쪽엔 햄과 계란, 치즈 등도 진열돼 있다. 연어회, 간장, 고추냉이, 야채로 구성한 도시락, 스프링롤·초밥 도시락도 판매한다.



바로 옆에는 식당이 있다. 이곳에선 메뉴를 고르면 수산시장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낸다. 초장 집의 일종인 셈이다. 해산물에 욕심내고 싶다면 세트 메뉴(2만8천∼9만5천원)를 주문하거나 수산시장에서 해산물을 직접 골라 담으면 된다.
피시앤칩스부터 데리야키 연어, 킹크랩, 새우구이 등 해산물 단품 메뉴, 연어나 고래고기를 이용한 버거도 있다. 애피타이저로는 싱싱한 굴, 훈제연어, 바닷가재를 맛볼 수 있다. 단품 가격은 200∼250크로네(2만7천∼3만4천원)로 조금 높은 편이지만 맛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다.
피시 미는 해물 뷔페 크루즈(170인승)를 운영한다. 새우, 조개, 홍합, 민물 가재, 훈제연어 등 싱싱한 해산물을 즐기면서 브뤼겐과 항구, 주변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매년 5월 22일부터 9월 15일까지 운영한다. 점심 크루즈는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간, 디너 크루즈는 오후 6시부터 2시간 30분간 진행된다.
해 질 녘 항구 주변은 붉게 타들어 가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람들은 항구 어디라도 궁둥이를 붙이거나 동상처럼 멈춰 서거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과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에드바르 뭉크를 만나다

항구 남쪽에는 베르겐 최대 번화가가 자리한다. 쇼핑몰과 슈퍼마켓, 옷가게와 스포츠용품점, 호텔, 레스토랑과 카페, 맥도날드 등이 기다란 직사각형의 광장을 따라 밀집해 있다.
한 블록 남쪽에 있는 공원에는 베르겐 출신으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음악가였던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의 초록색 동상이 서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머리 위에 서서 떠날 줄 모른다. 얼마나 많은 갈매기가 올랐는지, 동상은 새똥으로 하얗게 얼룩졌다.
남쪽으로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고, 호수 북측에서는 산허리를 알록달록 장식한 동화 속 집들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호숫가 벚꽃은 분홍빛으로 흐드러졌고, 그 아래 잔디밭에선 갈매기 떼가 털을 고르며 쉬고 있다.
호수 둘레는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벤치나 풀밭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댄다. 그들처럼 벤치에 앉아 잠시 여유를 만끽해본다. 따스한 햇볕과 화사한 꽃, 산허리의 예쁜 가옥과 시원스러운 호수, 오가는 사람들의 평온한 표정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호수 남쪽은 '미술관 거리'(Art Gallery Street)라 불린다.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나란히 있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KODE(베르겐 미술관의 공식 명칭)1∼4, 현대미술 전시관인 베르겐 쿤스트할(Kunsthall), 서노르웨이 공예박물관 등이 있고, 뒤편에는 콘서트홀이 자리한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곳은 KODE3. 바로 이곳에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은 오슬로에 있는 뭉크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다음으로 최고의 뭉크 작품을 갖추고 있다. '다리 위 여인들', '카를 요한의 저녁', '여자의 세 단계', '4대' 등 그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뭉크 이외에 '노르웨이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달(J.C. Dahl)의 낭만적인 풍경화, 아스트루프(Nikolai Astrup)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옛 가구와 장식품, 피아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심 남쪽에는 그리그가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던 빌라도 있다. 도심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곳은 지금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6∼9월 저녁에는 리사이틀이, 5∼10월 점심때는 콘서트가 열린다.



◇ 도시 전경 펼쳐지는 플뢰엔 산

베르겐 둘레로는 산이 7개 있다. 산 7개를 오르내리며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이 중 플뢰엔(Fløyen, 400m) 산은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다. 그곳 전망대에서는 베르겐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뢰엔 전망대로 가는 푸니쿨라(등산열차)는 항구 동쪽에서 출발한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구불거리는 좁은 골목길에는 예쁜 가옥과 상점이 있다. 베르겐 대표 명소답게 정류장에는 탑승을 기다리는 관광객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푸니쿨라가 미끄러지듯 경사로를 오르자 베르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베르겐 항구와 바다, 빨강과 갈색 지붕의 가옥들, 색색의 건물들이 형체를 보이더니 푸니쿨라는 약 3분 만에 해발 320m에 있는 상부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을 나서자마자 전망대 너머로 베르겐이 펼쳐진다. 항구 너머로 평온한 바다가 펼쳐지고 낮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관광객들은 베르겐의 전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전망대 인근엔 카페와 기념품숍, 식당이 자리한다.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놀고 있다. 산악자전거 대여점도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자 염소들이 커다란 바위를 점령한 채 휴식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산책로는 초록빛 무성한 숲속으로 이어지는데 10분 정도 걸으면 작고 호젓한 호수도 볼 수 있다. 걸어서 하산하는 것도 추천한다. 베르겐의 풍광을 감상하며 3㎞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45분 만에 도심에 닿을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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