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라산 성판악 40년 방치 쓰레기 수거…포댓자루 100개 분량

입력 2019-05-16 13:28   수정 2019-05-16 13:57

[르포]한라산 성판악 40년 방치 쓰레기 수거…포댓자루 100개 분량
1970년대 '한일소주' 제품명 적힌 병·포장지 등 쓰레기들 샌드위치 매립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70년대 소주병까지 있네요. 저도 난생처음 봅니다."
16일 오전 제주 한라산 성판악 입구 버스정류장. 웅성웅성 사람 말소리와 포크레인 기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쓰레기 수거가 한창이었다.
해당 쓰레기는 한라산 등반을 위해 성판악을 찾은 도민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제주도가 동원한 작업자 10여 명은 허리를 숙이고 땅 위에 이리저리 엉켜있거나 흙 속에 박힌 쓰레기를 손으로 꺼내 10∼20ℓ 포댓자루에 분리하고 있었다.
소형 포크레인 한 대는 분주히 흙을 파내며 땅속 깊숙한 곳까지 박혀있던 쓰레기를 건져 올렸다.
땅속에는 쓰레기와 흙, 또다시 쓰레기와 흙 순으로 각종 쓰레기가 샌드위치처럼 매립돼 있었다.
포댓자루를 들춰보자 난생처음 보는 제품명이 적힌 병과 포장지 등이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일소주 병.
1993년 한라산소주로 이름을 바꾸면서 판매를 멈춘 한일소주가 포댓자루 안에 크기별로 담겨있었다.
어디 하나 성한 데 없이 깨져 있었지만, 병 위에 적힌 글자만은 선명했다. 한일소주 뒤편에 붙어있던 라벨을 보자 제조 일자가 1976년으로 표기돼 있었다. 무려 43년 전이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지 49년째인 점에 미뤄 이 쓰레기 더미는 국립공원 지정 이후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일소주뿐만 아니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품을 감싸고 있던 각종 포장지와 병들이 속속들이 나왔다.
해태의 '메도골드'와 '차디차바' 아이스크림 포장지, 롯데공업주식회사의 '소고기라면' 봉지, 오리온의 딸기크림 샌드위치 쿠키 '참참', 종합가구 업체 에넥스의 옛 이름인 '오리표'가 적혀있는 플라스틱 포장지 등 대부분이 1970년대 제품이 담겼던 포장지였다.
작업자들은 "40년은 된 쓰레기 같다"며 입을 모았다.
50대 작업자들에게 "과거에 이 같은 상품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쪽으로 몇 발자국 옮기자 이번에는 고려인삼 음료병 수십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듯 낡은 음료병은 뚜껑에 한자로 적힌 '고려인삼'(高麗人蔘)과 제품명으로 보이는 'Cheil'로 겨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수거한 쓰레기는 2t가량으로, 10∼20ℓ 포댓자루 100여 개에 담겨 회천동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관계자는 "해당 쓰레기가 버려진 지 30∼40년이 된 것으로 추정돼 해당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범인을 찾아 경위를 알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주변 환경 정비 등 한라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dragon.m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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