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생태·생명운동의 선구자 무위당 장일순

입력 2019-05-16 14:44   수정 2019-05-17 12:04

민주화운동, 생태·생명운동의 선구자 무위당 장일순
김삼웅씨, '장일순 평전'으로 아름답고 참된 삶 회고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무위당 장일순은 한국 현대사의 거친 들판에서 일관된 자세로 시대 정신을 구현하면서 정직하게 살아온 야인이다. '일관→시대정신→정직'이라는 등식의 생애가 여간해서 성립되기 어려운 한국적 풍토에서 그는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8~1994년)은 어떤 권력이나 유혹에도 굴복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 신념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한 지성인이었다. 더불어 지구 종말을 재촉하는 물질문명 대신 생태문명론을 줄기차게 제기한 생명·생태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오는 22일은 무위당이 세상을 떠난 지 25주기가 되는 날. 서거 기념일을 앞두고 선생의 치열하면서도 따뜻했던 삶과 심오하면서도 폭넓었던 사상을 시대상과 함께 총체적으로 다룬 '장일순 평전'이 출간됐다. 집필은 독립운동사·친일반민족사 연구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맡았다.
생전에 무위당은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과 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과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늘 함께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폭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인생 후반기에는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자 앞에 늘 겸손했다. 그리고 지극한 배려와 따뜻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당'과 더불어 또 하나의 호인 '일속자(一粟子·좁쌀 한 알)'가 암시하듯이 폭압에 맞서면서도 인권과 양심, 자유와 민주, 생명과 공생의 삶을 일관되게 살았던 것.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 체하지 않았으며, 관직도 맡지 않은 가운데 절개 굳은 선비적·도인적 삶을 이어갔다. 글 한 편, 책 한 권조차 남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의 젊은 날은 저항과 투옥 등으로 파란만장했다. 강원도 원주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무위당은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해 배재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1944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저항과 투쟁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미군정이 국립 서울대의 초대 총장으로 미군 대령을 임명한다는 소식에 앞장서 들고 일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서울대 복학을 포기하고 혁신적인 사회대중당 활동을 했으며,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창하다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3년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무위당의 고향 사랑은 남달랐다. 군 제대 후 원주로 돌아온 그는 평생 동안 이곳에서 사회운동과 생명운동을 이어나갔다. 그 중요한 계기가 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지 주교와 의기투합해 민주화운동과 사회개혁운동, 생태·생명운동을 함께 펼쳤다. '70년대 원주, 80년대 광주'라고 할 만큼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가 바로 이곳 원주였다.
이와 함께 동학과 해월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부활시켜 생태·생명사상이 척박한 이 땅에 생명·협동운동의 주춧돌을 놓았다. 도시·농촌간 농산물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세우며 실질적 녹색운동이자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인 한살림운동을 전개한 것. 병들고 죽어가는 이 땅의 하늘과 흙, 물과 밥상을 살리자는 운동으로,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생명사상운동을 실천하며 살았다. 물질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주의의 길을 걸었던 19세기 미국 시인이자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연상케 한다고 할까.



저자는 "실천하는 행동인이자 고뇌하는 사색인이었던 장일순은 20세기 한국에서 대단히 보기 드문 '21세기형 인물'이었다"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 등 한국 사회의 중층적 모순 구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살림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해월의 사상과 함께 노자의 사유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아 '살아 있는 해월', '걸어다니는 노자'로 불렸던 무위당은 평소 온화한 성품대로 일상적인 생활을 즐기는 무욕과 겸손, 정감과 풍류의 범부였다. 튀거나 나서기보다 사색하고 책을 읽고, 틈나면 시서화에도 열중했다. 대나무와 솔도 그렸지만 조선 선비들이 개결함의 상징으로 본 난초를 특히 많이 쳤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장일순은 난초를 닮은 구석이 많다. 뛰어나지 않으면서도 빼어난 기품이 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고 찬탄한다. 첫 무위당 평전인 이번 책에는 그의 시서화 작품 50여 점도 실려 있어 감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두레 펴냄. 무위당사람들 감수. 416쪽. 1만9천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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