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권리였던 음악, 이젠 의무…10집 큰 숙제한 기분"

입력 2019-05-17 07:00  

김현철 "권리였던 음악, 이젠 의무…10집 큰 숙제한 기분"
30주년에 13년 만의 신보 '10집-프리뷰'…마마무·죠지 등 노래
시티팝부터 왈츠까지…"마지막 정규앨범, 30년 뒤 평가 궁금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달 종로구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가수 김현철(50) 콘서트 때다. 그가 첫날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65세 관객이 사인을 받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팬의 손에는 김현철이 과거에 냈던 LP들이 들려있었다.
김현철은 "아, 저런 분들이 있었는데…'란 생각에 가슴이 뜨끈해졌다.
"그날 300명의 관객을 보며 정말 좋았어요. '내가 이걸 왜 안 했지'라고 생각했죠. 예전엔 음악 하는 게 권리였어요. '음반 안 내면 너희 못 듣잖아'라는. 지금 나이가 되니깐 점점 의무가 되는 것 같아요."
16일 용산구 이태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현철은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답지 않게 "음악을 열심히 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제 음악을 소구해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음악할 수 있는 거죠. 특히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하지 않나…."
그가 마치 자기반성처럼 '열심'이란 단어를 되뇐 것은 10년 넘게 음악과 거리를 둬서다.
그는 오는 23일 오후 6시 미니앨범 '10집-프리뷰'(10th-preview)를 발표한다. 이번 앨범은 2006년 발표한 9집 '토크 어바웃 러브'(Talk about love) 이후 13년 만의 신보다. 가을 발매할 10집의 선공개 형태로 여름에 어울리는 5곡을 먼저 추렸다.
휴지기의 이유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9집을 내고 이유 없이 음악이 너무 재미없어졌어요. 라디오 DJ하고 '복면가왕' 출연하고 강의도 하니 '음악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악기와 컴퓨터를 모두 처분하고 음악 일상과 거리를 뒀어요."
지난 2년 사이 다시 창작에 대한 갈망이 예열된 과정은 있었다. 그의 퓨전 재즈 취향이 담긴 1집이 요즘 뉴트로 바람을 타고 시티팝 대표 음반으로 재조명된 영향이 한몫 했다.
시티팝은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 시대에 꽃핀 도회적인 분위기 음악. 그의 노래 중 1집의 '오랜만에'와 '동네' 등이 시티팝 계열로 리얼 악기에 신스 베이스, 드럼 머신을 가미해 세련된 풍미가 있다.
그는 "시티팝이 뭔지도 몰랐다"며 "미국에서 퓨전 재즈, 컨템퍼러리 재즈가 유행한 걸 일본에서 가져가 시티팝이란 장르를 만든 것 같다. 보통 음악이 나온 뒤 미디어가 장르를 규정짓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당시 음악을 요즘 시티팝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가수 죠지가 20세기 한국 시티팝 재조명 프로젝트에서 그의 노래 '오랜만에'를 재해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네이버뮤직 '온 스테이지'에서 죠지가 무대를 꾸미는데 제게 게스트로 서달라고 했죠. 공연 끝나고 죠지와 술을 한잔했는데 '그때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앨범에는 죠지를 비롯해 마마무의 화사와 휘인, 여가수 쏠, 여성듀오 옥상달빛(김윤주, 박세진)이 참여해 그의 자작곡에 목소리를 보탰다. 가수보다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앨범으로 박효신, 옥주현 등 쟁쟁한 보컬이 대거 참여한 8집을 연상시킨다.
"옛날엔 멋모르고 가수라 생각했어요. 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지, 가창력이 있는 게 아닌데…. 뚝 떨어져서 보니 노래를 진짜 못하더라고요.(웃음) 자기 음악을 하는 밥 딜런도 뮤지션이라 하지, 싱어라고 안 하잖아요. 전 누가 부르든 제가 작곡한 건 모두 제 음악이라 생각해 이런 작업 형태가 마음에 들어요."


첫곡 '드라이브'(Drive)부터 김현철의 장기가 살아났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듣기 좋은 청량한 시티팝이다. 김현철과 죠지의 음색이 한 목소리처럼 짝을 이뤘다.
"죠지의 '레츠 고 피크닉'(Let's Go Picnic)이 너무 좋았어요. 이 곡을 만들어 죠지에게 '나랑 한 곡 하자'고 찾아갔죠."
앨범에는 걸그룹 멤버부터 인디 뮤지션까지 개성있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쏠도 우연히 '슬로'(Slow)란 노래를 들은 그가 소속사를 수소문해 찾아갔다고 한다. 쏠이 참여를 결정한 뒤 그에게 맞게 쓴 노래는 '투나잇 이즈 더 나이트'(Tonight Is The Night). 쏠의 시원스러운 음색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김현철의 담백한 보컬이 뒤를 받쳐준다. R&B 리듬에 화려한 사운드 구성이 인상적이다.
오랜 친분의 옥상달빛이 노래한 '웨딩 왈츠'는 왈츠 리듬의 축가.
"(멤버) 김윤주가 결혼할 때 제가 주례를 했어요. 축시를 하라고 해놓고는 주례나 다름없었죠. 앨범을 내면 결혼식 축가를 써야지 했고, 이 친구들의 맑은 음색과 잘 어울릴 듯했어요."
타이틀곡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는 화사와 휘인이 듀엣했다. 피아노와 스트링이 가미된 클래식한 편곡의 발라드다. 마마무 소속사 대표가 대학교 후배인 작곡가 김도훈이어서 인연이 닿았다.
김현철은 화사와 휘인이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란 얘기를 듣고 가사의 모티브를 얻었다. 한 사람을 마음에 담은 두 여자가 마치 대화하듯 속내를 얘기한다. 과거 장필순, 장혜진, 이소라 등 여자 가수들의 히트곡을 만든 그답게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풀어냈다.

가을에 더블 앨범으로 낼 10집에는 최백호, 새소년, 정인, 박정현, 백지영, 박원, 오존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때는 앨범을 LP와 카세트테이프, CD로 모두 선보인다.
그는 "10집에 방점을 찍고 싶다"며 "3집까지 LP로 냈는데 그때 기분이 그립더라. 예전부터 앨범을 내면 LP를 꼭 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10집 이후엔 싱글 등 형태를 달리하며 좀 더 자유롭게 창작할 생각이다.
"10집을 내면 캐비넷에 넣고 닫아버릴 거예요. 정규앨범 형태에 얽매이는 건 10집이 마지막이에요. 앞으로는 싱글을 내든, 50분짜리 곡을 내든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어요. 큰 숙제를 한 기분이죠."
그는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등이 있던 '언더그라운드 음악 산실' 동아기획에서 1989년 데뷔했다. 보사노바 리듬의 '춘천가는 기차'를 시작으로 '달의 몰락', '왜 그래', '일생을' 등 연이어 히트곡을 내며 1990년대 천재 프로듀서로 불렀다. 퓨전 재즈 기반의 세련된 사운드, 모던한 편곡, 한국적 감성의 밸런스가 호평받았다.
수식어를 언급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 말의 배경을 귀띔했다.
"이승철 씨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떴을 때 '동아기획에서 나온 애가 천재라 그러던데?'라고 한 말이 와전돼 지금까지 붙은 거죠. 좋은 쪽으로요. 하하."
그는 "30년간 음악 해오니 프로듀서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조금 알겠다"며 "예전엔 일거수일투족을 다 컨트롤했다면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곡에 맞는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 진짜 좋은 프로듀서"라고 말했다.
30년 전 1집이 명반으로 꼽히며 조명받듯이 훗날을 위해 현재의 창작물을 정성들여 만들겠다는 생각도 거듭 강조했다.
"제가 오늘날 만든 앨범이 30년 뒤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요. 그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정성껏 잘 만들어야 하는구나' 생각하죠. 침체해 있는 우리 또래 가수들에게도 힘이 되는 앨범이면 좋겠고요."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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