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무덤 670기 쏟아진 창원서 거대한 부부묘 나왔다(종합)

입력 2019-06-04 09:52   수정 2019-06-04 16:57

가야무덤 670기 쏟아진 창원서 거대한 부부묘 나왔다(종합)
길이 7.7∼8.6m, 폭 4∼4.5m…최상급 토기·무구·마구 출토
유적 전체서 유물 1만여점…"조사 지역은 아라가야 해상교역 거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라가야 무덤이 쏟아져 나온 경남 창원 현동 유적에서 5세기 전반에 조성한 부부묘로 추정되는 거대한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 2기가 나타났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삼한문화재연구원(원장 김구군)은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부부묘를 포함해 4∼6세기 가야 무덤 670여기와 유물 1만여점을 찾았다고 4일 밝혔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과 창원시 우산동을 잇는 국도 건설 과정에서 조사된 현동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37기를 비롯해 가야시대 목곽묘 622기,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35기, 토광묘(土壙墓·널무덤) 17기와 기타 유구 200여기가 확인됐다.
앞서 경상남도와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6월 창원 현동 유적에서 유구 1천여기와 배모양토기, 무구 등 유물 2천500여점을 발견했다고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라가야 무덤 가운데 규모가 유독 큰 839호와 840호 목곽묘는 크기가 유사하고 해발 76m 선상에 나란히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부묘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주장했다.
토광 규모는 839호 목곽묘가 길이 7.72m·너비 3.96m이고, 840호 목곽묘는 길이 8.6m·너비 4.54m이다.
조사단은 "유구는 모두 도굴돼 토기, 철기 대부분이 도굴을 위해 뚫은 구멍인 도굴갱에서 출토됐다"며 "바닥 시상석(屍床石)에서는 고배(高杯·굽다리접시), 단경호(短頸壺·목짧은항아리), 장경호(長頸壺·목긴항아리), 철촉, 꺾쇠 등 일부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두 목곽묘에서는 모두 투창(透窓·굽에 뚫은 구멍)을 정교하게 내고 모양이 세련된 화염문투창고배가 나왔다.
또 839호 무덤에서는 농구와 공구가 발견됐고, 840호 목곽묘에서는 다양한 마구(馬具)와 무구(武具)가 출토됐다.
양하석 삼한문화재연구원 부원장은 "840호 무덤은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전기 목곽묘 가운데 가장 크다"며 "부장품 양상을 볼 때 840호 무덤은 남자, 839호 무덤은 여자가 묻힌 듯하다"고 말했다.
양 부원장은 이어 "출토 유물 제작 기술과 유구 규모 등을 분석하면 당시 최고층 부부묘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현동 유적에서는 방대하고 다양한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토기는 통형고배(筒形高杯·원통형 굽다리접시), 화염문투창고배, 단경호, 노형기대(爐形器臺·화로모양그릇받침) 등이 발견됐다.
또 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인 모루, 쇠끌, 망치와 덩이쇠, 철찌꺼기도 수습됐다. 배를 제작하는 데 쓰는 도구인 유건철부(有肩鐵斧·어깨가 넓은 쇠도끼) 수십 점도 나왔다.
아울러 찰갑(札甲), 복발형 투구, 목가리개,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큰칼), 쇠창, 쇠화살촉과 유리구슬, 세환이식(細環耳飾·가는고리 귀걸이) 등 다채로운 무기와 장신구도 발견됐다.
조사단은 특히 지난해 공개한 387호 목곽묘 출토 배모양토기와 335호 목곽묘에서 찾은 동물모양 토기, 제철과 관련된 다양한 유적에 주목했다.
피장자 머리 근처 덩이쇠 다발 위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배모양토기는 길이 29.2㎝·높이 18.3㎝이다. 형태는 단순한 통나무배에서 구조가 복잡한 구조선으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인 준구조선으로 파악됐다.
김구군 원장은 배모양토기에 대해 "아라가야 중심지인 함안 말이산 고분에서 기존에 나온 토기와 달리 노를 고정하는 고리가 없고 돛을 매달아 항해하는 범선으로 보인다"며 "근해가 아니라 먼바다를 오가는 배를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모양 토기는 몸체는 오리인데, 얼굴은 낙타인 것 같다"며 "낙타를 알았다면 당시에 상당히 먼 지역과 교류를 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이전에 현동 유적 주변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제철 생산 유적이 나왔다는 점과 이번 발굴에서 확인된 결과를 종합하면 조사 지역이 철을 만들어 교류하는 거점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함안읍에서 현동 유적까지 거리가 약 20㎞인데, 5세기 무렵에는 함안에 버금가는 해상교역 세력이 현동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진한과 변한 지역에서는 품질이 뛰어난 철을 생산해 낙랑·중국·일본 등지로 공급했다고 하는데, 현동 유적이 그 창구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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