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집안일 엄마만 하는 거 아니죠?"…젠더교육 현장에 가보니

입력 2019-06-09 06:00  

[인턴액티브] "집안일 엄마만 하는 거 아니죠?"…젠더교육 현장에 가보니

(서울=연합뉴스) 곽효원 이세연 황예림 인턴기자 = 학부모가 참관하는 젠더 수업이 열린 지난달 23일 경기도 고양시 백양초등학교 5학년 1반 교실.
수업이 예정된 4교시가 다가오자 교실 뒤쪽은 수업을 참관하려는 학부모로 가득 찼다. 학부모라고 해도 대부분은 엄마였고, 눈에 띈 아빠는 2명이었다. 서 있을 공간이 없어 교실 밖에서 뒷문이나 복도 쪽 창문으로 목을 빼꼼 내밀고 아이들이 젠더 교육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수업 주제는 '집안일, 누가 하고 있지?'였다. 수업 시작 벨이 울리자 정윤식 교사는 짧은 설명과 함께 설거지·밥 짓기·빨래하기 등의 집안일이 적힌 포스트잇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아이들은 체험지를 가족 구성원의 수 만큼 나눈 뒤 자신의 집에서 각각의 집안일을 하는 구성원의 종이에 포스트잇을 붙여 그래프를 만들었다. 각각의 가족 구성원이 누군지는 학생 자신만 아는 비밀. 그래프를 완성하면 친구들과 서로의 그래프를 보며 가족 구성원이 누구였는지 맞추는 게임이었다.
한 학생이 교실 뒤에 서 있는 엄마에게 집안일이 적힌 포스트잇을 보여주며 "우리 집은 이거 누가 하지?"라고 외치자 엄마는 말없이 자신을 가리키기도 했다.
친구 체험지의 가장 높은 그래프를 보며 아이들은 예외 없이 "당연히 이건 엄마지"라고 말했다. 게임이 마무리될 때쯤 한 학생은 "선생님, 이 게임 너무 티가 나요('뻔해요'라는 의미)"라고 소리쳤다.

"가장 많은 포스트잇이 붙은 게 '엄마'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는 말에 학생 19명 중 16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켜보는 엄마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정윤식 교사는 "엄마만의 일이나 부모님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입니다. 집안일이 누군가에게만 기울어져 있다면 바꿔야 해요"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뒤 김우석(12·가명)군은 "오늘 그래프를 만들어 보면서 엄마가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는 저도 변해서 가족 모두 집안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수업을 지켜본 한 엄마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가정에서의 성 역할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정윤식 교사는 젠더 교육을 연구하는 교사 모임 '아웃박스'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정씨는 "성별 고정관념을 깨서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새로운 성교육, 젠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젠더 수업을 통해 인권 인식이 향상되고 성차별 역시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다른 반에서 젠더 수업을 진행한 김수진 교사는 "국가 성교육 표준안에는 '사춘기가 시작되면 가슴이 나오고 몽정이나 초경을 한다'는 등의 2차 성징에 대한 내용이 담겼지만, 이를 성적 대상화 해선 안된다('놀림거리로 삼으면 안 된다'는 의미)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성에 관한) 지식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는데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은 젠더 수업에서 뭘 배우고 있을까.
지난달 2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서울시립 청소년 성문화센터 '아하센터'에서 열린 체험형 젠더 교육 현장. 간호사나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동명여고 동아리 '보건반' 소속 학생 15명이 젠더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학생들이 참가한 '섹슈얼리티 지도 그리기'는 아하센터 내 체험 시설에서 성에 대해 청소년이 가진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고 성 평등에 관해 토론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저는 오늘 선생님이 아닌 '매개자'로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성 지식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도록 할 거예요.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매개자님'이라고 불러주세요"
프로그램 진행자를 선생님이 아닌 매개자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 데 대해 낯설어하는 것도 잠시. 5개 팀으로 나뉜 학생들은 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피임과 성 소수자, 혐오성 발언 등에 대한 퀴즈의 해답을 찾느라 골몰했다. 센터 내 곳곳에 퀴즈의 힌트가 숨겨져 있었다. 문제를 풀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학생들은 '매개자님'을 외쳤다.
"'자위를 하면 키가 작아진다'는 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짜였나 봐", "(남자도 여자도 아닌) 간성(間性·Intersex)이라는 게 있는지 몰랐어. 성 소수자가 있는 건 알았는데 태어날 때 확실하게 남녀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학생들도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체험이 끝나자 팀별로 퀴즈풀이에 대해 기록한 노트를 돌려보기도 했다.
김승현(18) 학생은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에서는 피임법은 배워본 적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피임법이나 안전한 성관계는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김수경(17) 학생은 하필 시험이 끝난 날 젠더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처음엔 귀찮다고 느꼈다며 "학교 보건 수업보다도 알게 된 게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젠더 교육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정하은(18) 학생도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방송으로 진행해서 솔직히 자습시간으로 여겼어요"라며 "이렇게 집중해서 참여한 성교육은 처음이에요. 모르고 있던 성 지식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젠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더욱 효과적이고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법을 고민하는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성교육 전문 스타트업으로 '즐거운 성교육 놀이개발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니콘'은 지난 4월 '즐거운 교육연구소' 협동조합과 함께 젠더 교육 간담회를 진행했다.
'즐겁게 배우고, 당당하게 말하는 성'이라는 주제의 간담회는 해외에서 성교육에 사용하는 보드게임인 '퍼펙트 페어(Perfect Pair)'를 소개하고 시연하기도 했다.
유니콘 오지연 대표는 "기존의 좁은 시선의 성교육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며 "연령대에 맞춘 젠더 교육 과정을 만들어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체계적으로 실시한다면 여성 혐오와 같은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kwakhyo1@yna.co.kr, seyeon@yna.co.kr, yellowyer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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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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