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희호…평생 여성인권 신장 힘써

입력 2019-06-11 00:07   수정 2019-06-11 11:54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희호…평생 여성인권 신장 힘써
DJ정부 적극적인 여성정책·여성정치 문호 확장에 기여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10일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가 지난 2016년 출간된 '이희호 평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여성지식인, 여성운동가로서 평생 여성 인권 신장에 힘쓰며 한국 여성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이화고등여학교(이화여고 전신)와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당시 드물게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민주당)가 된 박순천 여사 등 당대의 엘리트들과 함께 여성운동 '1세대'로 활약했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결성과 1952년 여성문제연구원(현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에서 상임간사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노동자 근로환경과 여성 정치의식 등을 조사하고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
1959년에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YWCA에서는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섰고, 남녀차별적 법조항을 수정하는 데 힘썼다.
이 여사가 핵심이 된 YWCA의 이런 활동은 1989년 남녀차별적 내용을 일부 고친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고 훗날 호주제 폐지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1961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하고, 1999년 한국여성재단 출범에도 관여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온 후에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페미니스트'인 이 여사에게 평생에 걸쳐 받은 영향으로 김 전 대통령 역시 여성 문제에 관심이 컸기에 국민의 정부는 적극적인 여성 정책을 폈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부처마다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됐다.
김 전 대통령 취임 이전 50년간 1명에 불과했던 청와대 여성 비서관이 국민의 정부 5년간 10명으로 늘어났고 여성장관도 여럿 배출되는 등 여성의 공직 진출도 확대됐다.
1998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법이 각각 시행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여사는 이화여대 출신 재야인사 등을 중심으로 여성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여성계 출신 정치인들과 꾸준히 교류했다.
대표적인 인사는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낸 한명숙 전 총리와, 2002년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장상 전 총리 서리 등이다.
박영숙 전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도 이 여사와 각별한 사이였다.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신낙균 전 의원과 여성특별위원장을 역임한 윤후정 전 이화여대 명예총장, 이미경 전 의원 등도 이 여사와 교류가 있었다.


charg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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