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유유자적 초록빛 계곡길

입력 2019-07-13 08:01  

[걷고 싶은 길] 유유자적 초록빛 계곡길
무주 구천동 어사길

(무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전북 무주 구천동 어사길은 '치유의 길'로 불린다.
초록빛 싱그러운 숲과 담(潭),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청아한 새소리와 바람 소리, 곳곳에서 나타나는 비경이 지친 마음을 보듬어준다.
그 길을 걷고 있으면 자연의 맑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경사가 완만해 발걸음도 가볍다.



무주 구천동은 덕유산국립공원 향적봉에서 북쪽으로 나제통문까지 이어지는 28㎞의 계곡이다.
기암괴석과 원시림, 맑은 소(沼)와 담(潭), 폭포가 어우러져 선경(仙景)을 이룬다. 이 중 경치가 특히 수려한 곳이 있으니, 바로 33경(景)이다.
어사길은 구천동 33경 중 16경 인월담부터 25경 안심대에 이르는 3.3㎞ 구간이다.
조선 후기 어사 박문수(1691∼1756)가 구천동을 찾아 주민에게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바로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져 이런 이름을 붙였다.
어사길은 원래 계곡을 따라 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이 왕래하던 길이었다.
어사길은 덕유대자연학습장 남쪽 끝자락에서 시작하지만 구천동 관광특구 주차장부터 걸어야 하므로 안심대까지 실제 거리는 5㎞ 정도다.
펜션단지와 음식점 거리, 덕유대 오토캠핑장을 지나면 비로소 출발점이 나타난다.
구천동 계곡을 사이에 두고 주로 오른쪽은 어사길, 왼쪽은 탐방로다. 두 길은 어사길이 끝나는 안심대에서 하나로 합쳐져 백련사로 이어진다.
오를 때와 내려갈 때 각기 다른 탐방로를 이용하면 서로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를 즐길 수 있다.
이부영 덕유산국립공원 해설사는 "어사길은 1명만 지날 수 있는 자연의 길이고, 탐방로는 여러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있는 인공의 길"이라며 "자연 속을 거닐고 싶다면 어사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 초록색 싱그러운 무공해 숲길

어사길의 첫 번째 구간은 인월담까지 이어지는 0.8㎞ '청렴의 길'. 나무데크 산책로를 조금 걷자 계곡 옆으로 초록빛 무성한 숲길이 이어진다.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물오리나무, 참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등이 물이 잔뜩 올라 무척 싱그럽다.
길가 습지에는 도롱뇽, 개구리, 잠자리 유충이 살고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된다.
길은 무척 폭신하다. 나뭇잎이 쌓이고 길 아래에 두더지가 파놓은 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목나무, 생강나무, 누리장나무 등 잎을 문지르면 독특한 향기가 나는 나무들도 볼 수 있다. 4∼5월에는 길가에 야생화가 피어 그야말로 꽃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니 길은 계곡과 멀어져 물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300m쯤 걸었을 무렵 이정표가 오르막을 가리킨다. 위쪽에는 197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 있던 덕유마을 주민의 집터가 아직 남아있다.
내리막과 숲길을 지나 좀 더 걷자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라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1구간의 끝이자 16경인 인월담(印月潭)이다.
달을 새겨놓은 큰 연못이란 뜻으로 계곡물이 암반 위를 지난 후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다. 너럭바위 측면에는 '九千洞門'(구천동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기준으로 안쪽을 '내구천동', 바깥쪽을 '외구천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 계곡 따라가며 즐기는 비경 삼매경

인월담을 지나면 구월담까지 이어지는 '소원성취의 길'(0.8㎞)이다. 첫 구간이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는 숲길이었다면, 이 구간은 길이 계곡에 바짝 붙어있어 물소리가 커다랗게 들리는 계곡길이다.
시원스러운 물소리를 들으며 조금 오르자 길이 다리 너머 계곡 왼편으로 이어진다. 100여m쯤 더 걸어가자 초록빛 투명한 못에 괴물 형상의 커다란 기암이 머리를 수면에 대고 있다.
인근 사자목에 살던 사자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사자담(獅子潭, 17경)인데, 바위 모양이 사자보다는 거북에 가까워 보인다.
길은 커다란 바위의 비좁은 틈새로 이어진다.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위해 기도했더니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소원성취의 문이다.
소원을 떠올리며 바위 사이를 지나본다. 길 위쪽에는 소원성취의 돌탑도 있다. 돌을 하나 올려놓고 다시 소원을 빌어본다.
푸른 물 가득한 청류동(淸流洞, 18경),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을 가르쳐주는 소나무, 도깨비를 속여 커다란 바위를 두 개로 쪼개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지혜의 문을 지나면 선녀들이 목욕하고 비파를 연주하며 놀았다는 비파담(琵琶潭, 19경)에 닿는다.
다리 위에서 보는 숲과 못이 어우러진 경치가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맑고 시원스럽다.
길은 다시 다리 건너로 이어진다. 다연대(茶煙台, 20경)에서 조금 더 가면 21경 구월담(九月潭)이다. 구천동 계곡과 월음령(月陰嶺) 계곡의 물이 합류해 못을 이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못에 쏟아진 물이 일렁거릴 때 하늘에 뜬 달이 9개로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초록빛 숲을 수면에 담아낸 맑은 못과 붉은색 다리, 바위가 어우러져 눈을 시원스럽게 한다.



◇ 마음조차 치유하는 숲과 계곡

마지막 구월담부터 안심대까지 1.7㎞는 '치유의 길'이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물이 바위에 쏟아지며 나오는 음이온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면역기능을 강화해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상류로 향하는 길 오른편 숲으로 살짝 들어서자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의 석불 20여 개가 모여 있다.
1960년대 무주 태생 김남관 대령이 극락정토의 염원을 담아 불상 9천 개를 설치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현재 23개만 남겨진 것이라고 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거문고를 타는 듯하다는 금포탄(琴浦灘, 22경), 호랑이의 서글픈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호탄암(虎嘆岩, 23경), 울창한 수림과 기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류계(淸流溪, 24경) 등을 천천히 감상하며 걷다 보면 드디어 목적지인 안심대(安心臺)에 닿는다.
구천동과 백련사를 오가는 이들이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면 마음을 놓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안심대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잠시 쉬자 다람쥐 두 마리가 또르르 뛰어다닌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내 멀어지곤 한다. 사진을 찍기 좋게 포즈도 취해준다. 탐방객들이 먹을 것을 준 탓일까?
하산은 넓고 평탄한 탐방로를 이용했다. 올라오면서 보던 계곡의 풍경이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눈을 또다시 즐겁게 한다.
덕유산국립공원(구천동탐방지원센터 ☎ 063-322-3473)은 구천동 계곡 방문객을 대상으로 '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걷는 구천동 어사길'과 '금강모치가 살고 있는 구천동계곡 이야기' 등 자연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구천동 계곡의 유래와 역사, 동식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구천동 어사길은 왕복 2시간 40분이 걸린다. 여름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아 무더위를 피하고 마음마저 치유할 휴가지로 제격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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