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리학의 최전선 CERN에 가다

입력 2019-07-03 18:41   수정 2019-07-04 00:29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CERN에 가다
검출기 업그레이드에 한국 한 몫…"반도체 기술 덕"

(세시=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3일 세계과학기자대회가 열린 스위스 로잔에서 차로 1시간쯤 달리자 프랑스 세시에 다다랐다. 넓은 들판과 길가에 핀 해바라기,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등이 있는 풍경이 동화책 그림 속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차가 좁은 길목으로 들어서자 높이 20m 정도인 노란색 컨테이너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건물 위에는 'CMS'(뮤온 압축 솔레노이드)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CMS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대형강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의 검출기 중 하나다.
막심 고브제비타 CERN 선임은 "보이는 건물이 전부가 아니다. 100m 아래 모든 게 있다"며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안전모를 쓰고 철문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 검출기까지 내려보내 줄 승강기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다른 승강기와 다를 바 없지만, 일행을 지하 88m 깊이까지 내려주는데 약 5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하에는 콘크리트로 된 널찍한 복도가 있고 다시 여러 개의 철문을 지나자 지름 15m, 길이 21m의 CMS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전선으로 얽혀있는 무게 1만4천t의 거대한 이 기기는 사람의 손으로 제작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구조였다.

이렇게 복잡한 CMS 외에도 LHC에는 입자들이 충돌할 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입자를 잡아내는 검출기가 아틀라스(ATLAS), 대형 이온 충돌기 실험(ALICE), LHC 보텀 쿼크 공장(LHCb) 등 세 대 더 있다.
LHC는 둥근 링 형태의 가속기로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일대 넓은 지하 공간에 설치돼 있다.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속했다가 정면으로 충돌시키는 장치이다. 이 과정에서 양성자가 깨지며 쿼크, 글루온 같은 새 입자가 나왔다 사라지는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해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는 무엇이고, 이 입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붕괴되는지 밝히는 게 1954년 설립된 CERN의 연구 목표다.
2008년 가동을 시작한 LHC는 이미 1차 목표를 이뤘다. 빅뱅 직후 다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져 '신(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는 LHC가 가동을 멈추고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기자가 CMS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도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LHC 업그레이드에는 한국 연구진도 한몫을 했다. CMS 검출기에 추가할 뮤온검출기(GEM) 제작에 성공한 것이 한국 CMS그룹의 대표 성과로 꼽힌다. 한국이 제작할 GEM의 넓이는 약 260㎡로 테니스코트 2개와 맞먹는다.
앞서 서울에서 만난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조립과 설치를 고려하면 GEM이 2023년 처음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성자 충돌 뒤 생성되는 뮤온을 더 (높은 효율로)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전에 한국CMS그룹을 이끈 바 있다.
뮤온은 다른 입자의 성질을 알아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입자다. 양성자가 충돌해 붕괴할 때 발생하는 소립자로 수명이 50만분의 1초에 불과하다.
뮤온의 고효율 검출에 사용되는 GEM 검출기는 새로 등장한 기술로 한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GEM 제작에는 반도체 식각기술(실리콘 웨이퍼의 일부만 남기고 제거하는 기술)이 활용되는데, 이 분야에서 한국 기술력이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GEM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포일(foil)은 국내 기업인 (주)메카로와 한국CMS실험사업단이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에 성공했다. 포일은 지름 50∼70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얇은 막으로, 전자의 증폭을 통해 입자가 검출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CMS실험사업단과 CERN은 지난 4월 포일 26억원 어치를 CMS에 공급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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