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텅 빈 조리실…학생들은 빵과 주스, 그리고 도시락

입력 2019-07-03 13:00  

[르포] 텅 빈 조리실…학생들은 빵과 주스, 그리고 도시락
전주 온빛초 급식 조리원 13명 사흘 동안 파업 동참
학교 측 '도시락 싸달라' 가정통지문, 빵·주스 제공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첫날인 3일 오전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전주 온빛초등학교 급식 조리실은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점심이 임박했는데도 조리원은 찾아볼 수 없어 적막감이 맴돌았다.
이 시간이면 매일 분주하게 움직였을 조리 도구와 식기는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로 제 자리에 머물렀다.
끼니때마다 펄펄 끓었을 대형 국통과 밥통도 온기를 잃은 채 구석에 놓였다.
어제까지 누군가 입었을 진분홍빛 조리용 앞치마는 소독기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급식 조리원은 13명.
이들 모두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이날부터 사흘 동안 파업에 돌입했다.


점심시간 급식실 식탁에는 식판 대신 학교에서 미리 준비한 빵 봉지와 주스가 놓여 있었다.
봉지는 잘 포장된 빵과 포도 주스로 채워졌다.
교사들은 급식실에 온 학생들에게 반과 숫자를 확인하고 준비한 빵과 주스를 차례차례 나눠줬다.
운반을 담당한 학생들은 무거운 봉지를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짊어지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친구가 가져온 봉지에서 내용물을 꺼내 허기를 달랬다.
양이 모자라는 친구에게 아껴먹던 빵을 손으로 잘라 나눠주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학교 측은 급식 조리원의 파업에 대비해 미리 '며칠 동안 도시락을 싸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지문을 보냈다고 했다.
빵과 주스는 집안 사정 등으로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을까 봐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학생은 학교의 우려대로 이날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해 빵과 주스로만 식사했다.
옆에 있던 학생들은 그런 친구가 마음에 걸렸는지 도시락 뚜껑에 밥과 반찬을 덜어 슬며시 건네기도 했다.
한 학생은 "오늘은 급식실이 쉰다고 해서 선생님이 빵을 주셨다"며 "친구들과 빵과 도시락을 나눠 먹으니까 소풍 온 것 같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저학년 반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책상을 오가며 나눠준 빵과 주스를 잘 먹는지, 도시락을 싸 오지 않은 학생은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학교는 파업이 끝나는 5일까지 도시락을 싸 올 것을 가정에 당부하고 학생들에게는 대체식을 지속해서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영자 온빛초 교장은 "아무래도 도시락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빵과 주스를 제공했다"며 "(파업 동안) 한 명의 학생도 점심을 거르는 일이 없도록 교사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북은 특수학교와 단설 유치원, 초·중·고교 등 793곳 가운데 196곳이 이날부터 학교 비정규직의 파업으로 급식을 중단했다.
이 중 129개교는 빵과 우유로 급식을 대체했다.
온빛초를 포함한 47개교는 도시락을 지참토록 학부모에게 사전 안내를 했다.
나머지 20개교는 외부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방법 등으로 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할 예정이다.
ja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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