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인권] ①유엔 권고 흘려들은 한국 다문화 폭력 못 막았다

입력 2019-07-13 10:00  

[결혼이주여성인권] ①유엔 권고 흘려들은 한국 다문화 폭력 못 막았다
"가해자 엄벌 정도로는 다문화 가정 성 불평등과 폭력 못 막아"
비자 발급·귀화때 남편 절대적 존재…이혼후 국내 체류하려면 재판해야
"가난한 나라 출신', '여성'이라는 차별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편집자 주 = 최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두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행된 폭행이었습니다. 영상은 페이스북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이 여성의 고국으로까지 급속히 퍼졌습니다.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습니다. 경찰청장과 장관, 국무총리가 사과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남편을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점, 피해 사례, 인터뷰 등을 3편에 걸쳐 짚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오수진 기자 = 지난해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정부의 인종 차별 방지 정책을 심의하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결혼과 자녀 출산'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적, 문화, 언어가 다른 배우자를 거리낌없이 맞아들이는 대한민국에 국제사회가 경고장을 내민 것은 지난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는 유엔 인종차별 보고관이 한국 방문 보고서를 내놓고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 201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국적 취득 요건과 관련한 차별 조항 폐지를 권고했다.
수차례의 권고에도 한국 내 결혼이주여성의 인권과 가정 내 성 평등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다문화 가정 폭력 사건이 터졌고 결국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한국인 배우자가 폭행하는 동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며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을 이유 없이 때리는 나라'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의 안정적 체류권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가난한 나라 출신', '여성'이라는 차별에서 벗어나 한국에서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력 가해자 엄벌 정도로는 반복되는 다문화 가정의 성 불평등과 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제한된 결혼이민자 교육…가부장제에 갇힌 이주여성 체류권
13일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배우자는 혼인 과정에서 가정 내 성 평등, 인권 교육 등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현재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건강한 다문화 가족 구성을 위해 각각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과 결혼이민자 현지 사전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진행 중인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은 총 4시간이며 부부간 인권 존중, 갈등 해소 노력, 가정폭력 방지, 홍익인간 이념 등의 인권 교육은 1시간에 불과하다.
교육 대상자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특정 7개국 출신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한국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 외국인 배우자의 국가 또는 제3국에서 유학, 파견 근무 등으로 45일 이상 체류하면서 교제한 경우 ▲ 국내에서 외국인 배우자가 91일 이상 합법체류하면서 초청자와 교제한 경우 ▲ 배우자의 임신, 출산 그밖에 인도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프로그램 이수 대상에서 면제된다.
한국다문화가족·건강가정지원센터협회 김도율 회장은 "교육 대상자가 특정 국가 출신과 결혼하는 경우에 한정돼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결혼이민자 현지사전교육은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출신 이주여성만 들을 수 있으며 주로 한국 생활 적응과 한국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그친다.
한국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의 결혼이민비자 발급이 한국인 배우자, 자녀, 배우자의 가족 등 가부장제 구성 요소에 종속된 것도 문제다.
국내 결혼이민(F-6) 비자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이들 유형의 비자 발급은 ▲ 우리 국민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거나 ▲ 미성년 자녀를 국내에서 양육하거나 ▲ 한국인 배우자 사망·실종 등으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로 조건을 달고 있다.
지난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런 국내 결혼이민비자 제도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결혼이민자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체류가 안정화돼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 1년 가까이 걸리는 결혼 귀화 심사…국내 체류하려면 재판 이혼해야
이주여성들은 결혼 귀화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호소한다.
실제 결혼 귀화는 혼인 관계 유지, 미성년 자녀 양육, 신청일 등에 따라 짧게는 10개월, 길게는 18개월이 걸린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심사 기간에 불화가 일어나면 심사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남편의 학대를 참았다는 사례가 많다"며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나왔다가 귀화가 어그러진 사연도 들었다"고 전했다.
결혼 귀화 신청자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 귀화 심사 기간을 6개월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은 최대 485시간 프로그램을 들어야 해 생계를 책임지지 않은 사람만 수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결혼이주여성이 이혼한 뒤 국내 체류를 원하면 현실적으로는 재판 이혼을해야 하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진혜 상근변호사는 최근 폭력피해 이주여성 심포지엄에서 외국인 배우자는 '국내에서 한국인과 정상적인 혼인생활 중 자신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이혼한 사람'임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는 경우에만 체류자격 연장을 허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뉴얼 상으로는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귀책사유 없음을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재판 이혼을 통해 법원에서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을 입증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류자격을 연장받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전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다문화인구동태 통계를 보면 다문화 가정의 이혼에서 재판 이혼이 42.1%로 한국인 간의 재판 이혼(19.5%)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진혜 상근변호사는 "결혼이주여성의 체류자격 연장, 변경, 취소 처분은 국가가 상정하는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에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재판 이혼을 통해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을 입증해야하는 상황은 조정전치주의를 택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정법원 취지와도 역행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공동대표는 같은 심포지엄에서 "재판에서 명백하게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 사유로 이혼한다고 판시한 경우에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를 허락하지 않거나 부부 관계 개선을 위해 별거 중인 상태에서 체류 연장을 해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0일 대법원은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이혼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이번 판결은 결혼이주여성이 이혼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체류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본 기존 판결에 제동을걸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sujin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