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예술 즐기는 이유, 미학책에 답 있어요"

입력 2019-07-25 06:30  

"아름답지 않은 예술 즐기는 이유, 미학책에 답 있어요"
근대 서양 '미학 원전 시리즈' 3권 번역한 김동훈 박사
"18세기에 태동한 미학, 중요성 커져…번역 작업 계속할 것"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017년 5월 서울로7017 개장에 맞춰 서울역 인근에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거대한 미술작품 '슈즈트리'가 등장했다.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가 만든 '슈즈트리'를 본 일부 시민은 흉물스럽다는 혹평을 했다. 반대로 감상할 만한 공공미술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예술은 어렵다. 특히 현대예술은 대부분 아름답지 않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린 그림이나 쇤베르크가 작곡한 음악은 접했을 때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인간에게는 예술을 즐기려는 욕구가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 19일 마포구 서교동 도서출판 마티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훈(56) 박사는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논한 개념인 '숭고'(Sublime)를 통해 예술을 설명했다.
"현충일이 되면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자고 하잖아요. 예술에서 숭고는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버크는 지독한 악취, 엄청나게 큰 사물은 물론 상상력을 벗어날 정도로 아주 작은 세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숭고라고 했어요. 선이든 악이든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를 넘어가는 현상을 대하면 숭고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김 박사는 최근 18세기 서양 미학(美學) 서적 3권을 번역했다. 마티가 '미학 원전 시리즈'로 펴낸 '미학',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비극에 대하여 외'이다.
'미학'은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고틀리프 바움가르텐이 라틴어로 쓴 책이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학문 체계를 잡았다. 완역은 아니지만, 독자 이해를 도우려고 주석과 해설을 풍부하게 수록했다.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비극에 대하여 외'는 각각 버크와 데이비드 흄이 집필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과와 서울대 미학과를 거쳐 독일 브레멘대 철학과에서 하이데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박사는 '미학'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흄이 지은 책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는 예술작품에서 '좋다'라는 기준이 무엇일까에 대한 글이고, 비극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역설적 상황을 탐구한 논문"이라면서 "세 권 중에서는 흄 책이 가장 잘 팔리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청년 시절 시인을 꿈꾼 김 박사는 게오르크 루카치(루카치 죄르지)가 쓴 책과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고는 미학에 빠졌다.
그는 미학을 단순히 예술철학으로 보지 말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예부터 자연이나 사물에서 느끼는 미를 이야기하고 싶어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김 박사는 "본래 미학은 감각적이고 감정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었다"며 "이성 중심인 서양 철학에서 뒤늦게 독자적 학문이 됐지만, 지금은 위상이 매우 높아져서 현대 철학자 중에 예술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유독 서양에서만 미학이 발달한 이유를 묻자 "유럽에서도 예술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시기는 18세기였고, 조화를 중시한 클래식 음악을 제외한 예술은 '기술'이라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미학 원전 시리즈 후속편으로 샤를 바퇴가 쓴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는 예술 장르들'과 조지프 애디슨 저작 '상상력의 즐거움' 등을 낼 예정인데, 영어로 '파인 아트'(fine art)라는 개념을 만든 인물이 바로 바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독일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정작 번역한 책은 라틴어와 영어 서적이다. 독일에서 희랍어 검정시험과 라틴어 검정시험에 합격하고 프랑스 소르본대에서도 수학해 5개 외국어를 독해한다.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는 국수주의 사고방식 때문에 외국어 공부를 싫어했는데, 고등학생 시절에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을 읽고 독일에 관심을 뒀다"며 "유학 갔을 때 독일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일어가 늘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 번역해서 생활비를 벌었거든요. 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학자로서 명성을 쌓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번역을 미루고 미뤘죠. 이번에 라틴어 번역은 처음 했는데, 서양에는 근대에 쓴 중요한 저술 중에 라틴어 서적이 적지 않습니다. 이제 번역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의미 있는 책은 꾸준히 옮기려고요."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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