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 '관광무기화'에 본토인 관광객 급감한 타이베이

입력 2019-08-26 15:57  

[르포] 중국 '관광무기화'에 본토인 관광객 급감한 타이베이
대선 앞 자유여행 중단에 조단위 타격 압박…"안 와도 된다" 반감도
타이베이101·고궁박물원·단수이 등 주요 관광지에 中관광객 줄어


(타이베이·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대만인이신가요? 여권 확인 하겠습니다"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 홍차오(虹橋)공항의 타이베이(臺北)행 여객기 탑승구 앞. 항공사 직원들이 줄을 선 승객들을 한명씩 지나가면서 여권과 여행 서류를 미리 점검하고 있었다.
지난 1일부터 중국이 자국민의 대만 자유 여행을 제한함에 따라 본인 확인 절차가 강화된 탓이다.
탑승권 확인 장소에 공안이 서서 지켜보는 것도 전에는 없던 모습이었다.
타이베이 쑹산(松山)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 안에 들어서자 전체 자리의 3분의 1가량이 비어 있었다.
두시간의 비행 끝에 내린 타이베이 공항의 입국장.
'한 치의 국토도 양보하지 않고 민주·자유를 수호한다'는 구호와 함께 대만의 육·해·공군의 훈련 모습을 보여주는 대만 국방부의 3분 짜리 영상 광고가 대형 스크린에 반복해 흘러나와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양안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타이베이 곳곳에서는 중국의 '관광 무기화' 효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淡水)의 관광지 진리대학 교정.

한국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띈 가운데 영어권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본토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은 "대륙(중국 본토) 관광객이 하루 열 명이 안 될 정도로 줄었다"며 "한국 관광객들이 계속 많이 찾아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빌딩도 중국 본토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야경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몰릴 금요일 저녁 시간인데도 개인 관광객들은 10분가량만 줄 서 기다리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토요일인 24일 오후엔 국민당이 1949년 대만으로 패퇴하면서 가져온 진귀한 중국 보물로 가득 찬 고궁박물원을 찾아갔다.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이름난 고궁박물원은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관람객들로 북적거렸지만 평소보다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고궁박물원 안내 직원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람객이 와 전체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 관람객이 준 것은 맞다"며 "평소 주말 이 시간이면 입장하기 위해 수십 분 이상 시간이 걸릴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1일부터 본토 주민의 대만 자유 여행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해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 개인 관광객은 약 107만명이었다.
대만 정부가 분류하는 국가·지역별 기준으로 보면 일본인 다음으로 '중국 대륙' 관광객이 많았다.
대만 여행사협회는 자유 여행객이 70만명가량 감소한다는 가정하에 약 280억 대만달러(약 1조836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만 업계는 중국 정부가 향후 단체 관광도 단계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이미 수입 감소를 체감한다. 중국 본토에서 온 자유 여행객들은 택시를 하루 단위로 대절해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수요가 돌연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사 양모씨는 "대륙 관광객이 줄어 택시 기사들이 벌써 수입이 확 주는 걸 느낀다"며 "택시 말고도 숙박, 기념품 가게 같이 여러 업종에도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1월 대만 대선을 불과 넉달여 앞두고 나온 중국의 이번 조치의 메시지는 매우 선명해 보인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상대적으로 친중 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시 시장이 각각 양대 정당인 민주진보당과 중국국민당의 후보로 확정된 가운데 대만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대만) 독립 주장은 본토인이 대만으로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말해 이번 조치가 민진당과 대만 내 탈중국 지향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드러냈다.
세계 1위 인구대국인 중국이 자국 여행객을 대외적으로 무기화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단체 관광 중단 조처로 한국은 큰 경제적 손해를 봤다.
하지만 중국의 대만 압박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대만 대선을 앞두고 연초부터 군사·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만을 향한 압력을 높여가고 있지만 정작 대만에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작년 11월 지방 선거 대패로 정치적으로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차이 총통은 중국 본토의 위협에 단호하게 맞서는 '민주주의 수호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오히려 지지율을 상당히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유 여행 중단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국 본토의 압박에 대만인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번화가인 시먼(西門)의 한 쓰촨 음식점 주인은 "대륙 손님들이 안 와도 한국,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손님들이 오면 된다"며 "벌을 주는 것처럼 여행객을 안 보낸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