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살해 현장 오싹한 웃음소리" 英변호사가 전한 공포

입력 2019-09-30 16:19  

"카슈끄지 살해 현장 오싹한 웃음소리" 英변호사가 전한 공포
사우디 총영사관 도청 녹음에 치밀하고 잔혹했던 살해 담겨
카슈끄지 약혼녀 "그들은 반드시 대가 치르게 될 것"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웃음소리가 들린다. 냉정한 업무다. 그들은 카슈끄지가 들어오면 살해되고 시신은 훼손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1년 전 피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녹음을 들은 헬레나 케네디 변호사는 30일(현지 시간) 영국 BBC 방송에 "온몸이 오싹해졌다"고 말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초법적 사형에 관해 특별보고관이 이끄는 조사단에서 일한 그는 카슈끄지 피살 당일과 그 전날 총영사관에서 이뤄진 대화를 담은 45분 분량의 녹음을 들었다.
당시 터키는 사우디 총영사관을 상시 도청하고 있었는데, 케네디 변호사는 이 녹음을 듣기 위해 정보당국을 설득하는 데만 1주일이 걸렸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28일 재혼을 준비 중이던 카슈끄지는 이혼 확인 서류를 받기 위해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와 이스탄불 시청에 갔지만, 사우디 정부가 발급한 서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총영사관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젠기즈는 이날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나온 카슈끄지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영사관 직원들이 차와 커피를 대접해줬다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 특히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비판하는 칼럼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던 카슈끄지는 사우디에서 이미 반정부 인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카슈끄지가 나간 뒤 바로 총영사관 측은 본국과 전화 통화를 한다. 도청된 전화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되고 있었다.
카슈끄지의 방문 사실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인 사우드 알 카타니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유엔 조사단은 보고 있다. 알 카타니는 이미 사우디에서 자행된 여러 건의 반체제 인사 고문, 감금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10월 1일 세 명의 사우디 정보요원이 총영사관에 도착했고, 이튿날 법의학 전문가 살라 알투바이지와 왕세자의 경호원 마헤르 압둘아지즈 무트렙 등 9명이 들어왔다.
케네디 변호사는 녹음 내용으로 볼 때 무트렙이 작전을 실행한 인물로 보인다면서 "총영사와 무트렙의 전화 통화 중에는 '카슈끄지가 화요일에 방문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았다'는 언급도 있었다"고 말했다.
10월 2일 오전 카슈끄지와 젠기즈가 총영사관으로 가는 중에 무트렙과 알투바이지는 소름 끼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케네디 변호사는 "알투바이지가 '나는 시체를 자를 때 종종 음악을 듣는다. 어떤 때는 손에 커피와 시가를 들고 있다'고 말하고 두 사람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고 전했다.
그는 알투바이지가 "내 평생 처음으로 바닥에 놓고 (시신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다. 도축업자도 가축을 도축할 때 매달아 놓고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카슈끄지가 도착할 시간에는 "희생에 쓸 동물이 도착했나"라고도 했다. 당시 영사관 2층 마룻바닥에는 플라스틱(비닐)이 깔렸고 터키 현지인 직원들은 하루 휴가를 받는 등 암살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BBC는 케네디 변호사가 노트에 메모한 내용을 읽을 때 목소리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전했다.

영사관 앞에서 젠기즈와 헤어진 카슈끄지는 건물에 들어간 뒤 안내 데스크에서 인터폴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사우디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케네디 변호사는 "확신에 찬 남자였던 카슈끄지가 자신에게 일어날 끔찍한 일을 알고는 분노와 두려움에 눌린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카슈끄지가 '주사를 놓을 것인가'라고 묻자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케네디 변호사는 "카슈끄지가 '어떻게 공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나'라고 두 번 묻고는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쓴 듯한 상황으로 이어진다"며 "그의 입을 손이나 다른 무언가로 틀어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를 잘라라'라는 말이 들린다며 이는 무트렙의 목소리 같았고 다른 사람이 '끝났다'고 하자, 또 다른 누군가가 '잘라, 잘라, 이걸 머리에 올려놓고 감싸'라고 했다고 전했다.
케네디 변호사는 암살팀이 카슈끄지를 참수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날 오후 3시 총영사관 차량이 영사 관저로 이동했는데 세 명의 남성이 가방과 플라스틱 봉투를 들고나오는 장면도 CCTV에 찍혔다. 카슈끄지의 시신은 이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칼라마르 조사관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왕세자를 포함한 사우디 고위 관리들의 개입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왕세자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9일 방송된 미국 CBS '60분'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정치지도자로서 책임은 인정하지만 절대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카슈끄지의 약혼녀였던 젠기즈는 이날 dpa통신 인터뷰에서 "그들은 자말을 위험하다고 보고 제거했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에 직면했다. 그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해 "왜 자말이 죽었는지, 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mino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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