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기억](17) 獨 뒤흔드는 극우 진앙, 서독TV 못본 '무지의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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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0-30 06:25  

[서독의 기억](17) 獨 뒤흔드는 극우 진앙, 서독TV 못본 '무지의 골짜기'

[서독의 기억](17) 獨 뒤흔드는 극우 진앙, 서독TV 못본 '무지의 골짜기'
옛 동독지역서 경제력 강한 드레스덴에 극우 강세 '수수께끼'
"서독TV, 옛동독시민 민주적 성향 형성에 긍정적"…갈등구조 훈련




[※ 편집자 주 = '비핵화'와 '평화'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의 외교적 흐름 속에서 '통일'은 이제 현실적 주제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많은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 한반도 통일의 '유일한 참고사례'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입니다. 한반도에서 8천500여 ㎞ 떨어진 동서독의 교류·협력과 통일, 이후 통합 과정은 더 이상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일에 다리를 놓은 동서독 교류ㆍ협력이 이뤄지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당시 서독 현실과 한국 간에 유사점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남갈등' 못지않게 '서서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서독에서도 경제적 지원과 인권 문제가 갈등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인 올해, 연합뉴스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서서갈등'의 전개와 극복, 이 과정에서 민심의 흐름, 동서독 교류·협력의 일상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동독과의 공존에 성공했던 '서독의 기억'을 꺼내봅니다. 이제 겨우 서로에게 겨눈 총부리를 거두려는 한반도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연합뉴스는 올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새로운 자료 조사와 관점으로 취재, 8개의 관련 주제로 독자 여러분께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이 일곱번 째 시리즈로, '미디어 교류'를 주제로 3일간 3개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기획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정치+문화연구소'의 이진 훔볼트대 정치문화학 박사가 협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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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통일은 '투자' vs '공포'…진보紙 사주·편집장도 갈려
(19) 분단기 서독 뉴스통신사의 동독특파원 인터뷰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의 주요 관광도시인 드레스덴은 옛 동독 시절 동독 주민들 사이에 '바보들의 골짜기'(Tal der Ahnungslosen)라고 불렸다.
엘베강의 골짜기 지형이어서 서독 TV의 전파가 닿지 않았다.
이 탓에 드레스덴 주민들은 서독의 실상을 접할 수 없었다.
서독의 자본주의 발전상뿐만 아니라, 대(對)동독정책을 둘러싼 갈등 등 정치·사회·경제적 갈등 구조에 상대적으로 감감했다.
서독 TV에서 다루는 동독의 이면도 보지 못했다. 드레스덴의 TV에선 동독 당국의 검열을 거친 동독 방송 프로그램만 흘러나왔다.
이런 탓인지 동독 체제에 비판적인 동독 시민들에게 드레스덴 거주자들은 실상에 무지한 이들로 비쳤다.
동독 시민들의 상당수는 분단기인 1980년대에도 미디어 교류 탓인지 서독의 정치적 변화의 소식 등에 밝았다.
사회적 갈등이 여실히 보도되는 자유로운 서독 사회에 대한 간접 경험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일의 충격을 줄여줄 수 있었다.
반면 서독 TV 전파가 닿지 않은 드레스덴에서는 통일 이후 민주적인 시민사회 형성이 다른 동독 주요 도시들보다 더뎠다는 지적이다.
현재 드레스덴이 옛 동독지역 가운데 경제적으로 번성하는데도 오히려 극우 부상 문제의 중심지가 된 곳이라는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이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한 갈등 구조 및 해결 방식을 조금이나마 접한 옛 동독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의 차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앞으로 모색되어야 할 남북 간의 미디어 교류 확대의 의의뿐만 아니라, 교류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레퍼런스이기도 하다.



◇ 동독시민, 서독TV로 사회갈등 등 자본주의 실상 간접 맛봐
드레스덴은 현재 독일의 대표적인 극우 운동 조직인 '페기다'(PEGIDA)의 발생지다.
페기다는 '서방세계의 이슬람화에 저항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의미다. 반(反)이슬람 조직인 셈으로, 난민 유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극우세력이 폭력시위를 일으킨 작센주(州)의 켐니츠 사태도 페기다가 주도했다.
지난 8월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 선거에서 극우 성향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이전 선거보다 무려 17.8% 포인트 오른 27.5%의 득표율로 2등을 차지했다.
드레스덴을 포함한 작센주는 옛 동독지역 가운데 상대적으로 산업이 발달하고 소득이 높은 지역인데도 그렇다.
단순히 경제적 격차에 의해 '2등 시민'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드레스덴은 대표적인 관광도시여서 현지 시민이 외국인을 접하는 기회도 많아 친숙하다.
외국인에 대한 공포감을 자극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휘둘려 AfD 지지자가 많다고 단정짓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통일 후 옛 동독지역에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시민사회의 역량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틈을 타 극우세력이 부상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나마 옛 서독 TV를 시청할 수 있었던 동독 주민들은 서독 사회의 갈등 상황도 그대로 전달받아 다소 자본주의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맛봤다.
실제, 서독 당국이 통일 전까지 동독 주민을 상대로 비밀설문조사한 '인프라테스트' 조사 결과, 동독 주민들이 서독의 정치 변화를 민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新)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에서 보수적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으로 정권이 넘어간 1982년 말 직후 이뤄진 조사에서, 동독 시민의 61%는 서독의 대(對)동독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관될 것이라는 서독 시민의 응답(73%)보다는 낮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반면, 서독 TV를 시청하지 못한 드레스덴 시민은 서독에 대한 정보에 대해 다른 지역 시민만큼 밝지 못했다.
구전으로라도 듣기도 쉽지 않았다.
비밀경찰인 슈타지 요원들이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동독 사회에서 동독 주민들은 속내나 서독에 대한 이야기를 가정 밖에서 잘 하지 않았던 탓이다.
통일 이후인 1990년대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서독 TV 시청을 할 수 있던 지역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적게 나왔다.
이에 대해 독일 학계에서는 서독 TV가 옛 동독 주민의 민주적 성향 형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반면, 동독 TV는 옛 동독인의 민주적 성향 형성을 방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독 내 저항세력 출신으로 연방정부 차관급인 롤란트 얀 슈타지 문서관리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옛 동독 주민들은 역동적인 시민사회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부족했다"면서 "독재사회가 민주사회로 바뀐 뒤 시민사회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은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작센 왕국의 수도로서 그리고 독일 제국의 산업 중심지로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드레스덴 시민들이 통일 후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에는 시민사회 형성과정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lkbin@yna.co.kr #서독의기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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