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포기' 선언한 일본서 무기전시회 열린 이유

입력 2019-11-22 07:00   수정 2019-11-22 08:42

'전쟁포기' 선언한 일본서 무기전시회 열린 이유
군수업계, '방위예산 팽창 일본은 미개척 황금시장' 눈독
일본은 '재해시 이용가능 장비' 강조, 앞으로도 2년마다 개최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전쟁포기'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일본에서 육·해·공을 망라한 대규모 무기전시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18~20일 지바(千葉)시 마쿠하리(幕張) 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미국과 영국, 인도 등 20개 이상 국가의 154개사가 참가했다. 일본에서도 대표적 방산업체인 미쓰비시(三菱)중공업과 IHI 등 61개사가 참가했다. 일본 업체들은 다른 참가국 군수업체 보다 밝고 넓은 부스를 설치해 주목을 받았다.




전시회에는 각종 총기류와 장갑차, 야간 투시경 등이 다수 출품됐다. 참가 업체들은 무기 폭발에 따른 바람(爆風)을 막아주는 타일, 드론 포획 장비 등을 전시한 부스에서 장비사용 실연을 해 보이면서 설명에 열을 올렸다.
"아무리 때리고 걷어 차고 문질러대도 아무렇지도 않다. 물론 생명도 지켜준다". 독일의 한 출품업체는 속옷 처럼 얇은 흰색 방탄조끼를 입은 채 포복하는 장면을 실연해 보이기도 했다.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양복차림의 한 남성은 적색 조준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춰보면서 "무척 가볍네"라고 중얼거렸다. 출품자는 "레이더 스코프에도 인공지능을 적용해 성능이 좋아졌다"면서 "재질도 좋아져 경량화 됐다"고 말했다.


21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부스마다 커피와 가벼운 식사를 대접하는 가운데 육·해·공 제복차림의 자위대원과 훈장을 단 각국 군 관계자들이 장갑차와 미사일 앞에서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군사용 헬리콥터 등은 모형을 전시하고 관심이 있으면 전시회장에서 보이지 않는 상담실로 옮겨 교섭이 이뤄진다고 한다.
'DESI JAPAN'으로 명명된 이 전시회는 원래 1999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2년에 한번씩 열려온 행사다. 주최자의 하나인 클라리온 이벤트사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도 열렸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커져 이번에 일본에서 열게 됐다. 일본방위성은 내년에 5조3천223억 엔(약 57조7천800억 원)을 방위예산으로 요청해 놓고 있다. 클라리온 이벤트사 담당자는 "일본의 방위예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면서 "아시아 태평양 군수시장에 참여할 방안을 모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야간 투시경 부스를 설치한 영국 기업 관계자는 "일본은 황금알을 낳을 미개척 시장으로 보인다"면서 "오늘도 많은 자위대원이 부스를 방문했다"며 뿌듯해 했다.
방위성과 외무성, 경제산업성 등 범정부 차원에서 전시회를 후원한 일본으로서는 이번 전시회가 일본의 기술력을 세계 방산업계에 알리는 기회라는 의미가 있다. 주최자의 일원인 '크라이시스 인텔리전스'의 아사리 마코토(?利?)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일본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방위장비'를 미국과 유럽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업체 중에는 군수사업에서 철수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무기수출 3원칙'을 개정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무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했으나 국제경쟁에서 밀려 일본산 항공기 등의 수출은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아사리 대표는 "북한과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찬반 양론이 있지만 일본도 세계 무기시장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 기업에 전시회 참가 의의를 물었지만 대부분 입을 다문 채 외국 참가자와는 달리 전시품이 "재해 발생시와 평상시에도 쓸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주로 강조했다고 전했다. 전시장 밖에서는 전쟁포기를 선언한 일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기매매 협상이 이뤄지는 전시회 개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항의활동도 벌어졌다. 무기전시회는 앞으로도 2년에 한번씩 일본에서 열릴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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