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① "우한 다녀왔죠? 같이 가시죠"

입력 2020-02-01 08:00   수정 2020-02-03 17:55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① "우한 다녀왔죠? 같이 가시죠"
상하이 '집중 관찰 시설' 지정된 호텔 609호실 배정받아
독방서 14일간 탈 없이 지내면 '퇴소'…아침저녁 두 번 체온 확인


[※ 편집자 주 =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종코로나 발원지인 우한에 현장 취재를 다녀온 연합뉴스 특파원도 예외 없이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격리시설에 수용됐습니다. 직접 경험한 중국 격리조치를 현장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수차례에 걸쳐 전해드겠습니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문 좀 열어보세요."
지난 30일 밤 7시께. 기자가 혼자 머무르고 있던 상하이의 거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습니다.
방문을 열자 마스크에 고글까지 쓴 공안과 방호복을 입은 보건 당국 관계자들이 여럿 서 있었습니다.
"최근 우한에 다녀온 적이 있죠? 지금부터는 우리가 정한 곳으로 숙소를 옮겨야 합니다."
공안의 요구에 바로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곳, 상하이시 정부가 운영 중인 우한 체류 이력자 '집중 관찰 시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여기로 온 이유는 최근 14일 이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가장 심각한 중국 내륙 도시인 후베이성 우한(武漢)시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 새벽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한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우한에서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한 폐렴'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해외 뉴스의 최전선에 있는 특파원으로서 시급히 현장에 가 직접 취재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좌고우면할 것도 없이 달려갔습니다.
급히 출장 신청을 내자 회사 측은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국 승인을 내어 줬습니다. 대신 우한 체류 기간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할 것, 위험 지역에 대한 무리한 접근을 삼갈 것을 각별히 주문했습니다.
21일 하루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의심받고 있는 화난(華南)수산시장, 환자들이 집중적으로 치료받고 있는 진인탄 병원, 우한 시내의 대형 상업시설, 지하철, 한커우역 등을 서둘러 둘러봤습니다.
각종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팔아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로 의심받고 있는 화난시장이 우한의 최대 기차역인 한커우역에서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은 특히나 놀라웠습니다.

'두려움에 짓눌린 '우한 폐렴' 발원지…마스크도 매진' 제목의 현장 르포 기사를 송고하자 이미 늦은 밤. 눈을 붙인 뒤 다음 날인 22일 오전 비행기 편으로 우한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뒤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고 우한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23일 새벽, 중국 정부는 우한시와 외부를 잇는 항공편과 기차편 등을 모두 끊는 '봉쇄령'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루만 더 우한에 머물렀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계속 그곳에 있다가 31일 우한에서 한국으로 간 특별 전세기를 탔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우한의 심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모습을 목격한 저는 22일 상하이로 돌아온 뒤 스스로 격리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당국은 그간 타지로 나간 우한 주민이나 우한에 잠시라도 머무른 이들에게 자택이나 숙박 시설 등에서 스스로 격리 생활을 하도록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전쟁 선포'를 계기로 중국의 각 지방정부들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섰습니다.
상하이시를 비롯한 주요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우한 등 후베이성 출신 사람이거나 이 지역에 잠시라도 머무른 이력이 있는 이들을 철저히 찾아내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한 '집중관리 시설'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책은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강력히 적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저 말고도 우한에서 온 한 한국 교민도 상하이남역 인근의 또다른 집중 관리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부 지방정부는 '우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한 명당 수십만원의 신고 포상금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발병 초기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전열을 가다듬고 정부와 사회의 모든 자원을 질병 통제에 최대한 쏟아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묵던 곳에서 나온 저는 은색 승합차 맨 뒷자리에 태워져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 비즈니스급 호텔의 주차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기자의 앞자리에는 흰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앉았습니다. 탑승 차량 뒤에는 공안 차량이 경광등을 켜면서 따라왔습니다.
도착한 곳은 상하이시 민항구 정부가 주변을 완전히 통제한 상태에서 집중 관찰 대상자들을 수용하는 전용 시설이었습니다.
주차장에 내리자 호송한 공안과 방역 요원들은 방역복을 입고 기다리는 다른 이들에게 저를 넘기고는 그곳에서 바삐 떠났습니다.
공안은 다른 동료에게 "다음은 ○○○, 일가족 3명이네. 빨리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처럼 소재지를 미리 파악해 놓은 우한 체류 이력자들을 또 '데리러' 가는 것이지요.
저는 짐이 든 트렁크와 가방을 메고 비상계단을 통해 6층까지 걸어 올라갔습니다. 혹시 비말을 통해 바이러스가 확산할 것을 우려해 승강기를 일부러 운영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기자를 안내하던 방역 요원은 "이제 한 30명 좀 넘었다"고 귀띔해 줬습니다.
저에게는 609호실이 배정됐습니다. 두어 평쯤 됨직한 독방이었습니다. 한겨울이지만 난방 장치를 꺼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아 외투를 입고 있어도 무척 춥게 느껴졌습니다. 고장 난 줄 알았던 난방기를 켜 놓고 20분쯤 지나니 그제야 따뜻한 바람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안내한 방역 요원은 하루에 오전과 오후 각각 한 번씩 스스로 체온을 재고 관리 요원들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복도에는 관리 요원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복도 곳곳에 달린 폐쇄회로(CC)TV는 혹시나 방에서 누가 나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지요.

문제가 없다면 언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를 묻는 물음에 방역 요원은 뭐라 뚜렷한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안내해준 방역 요원이 떠난 뒤에 혼자 방에 남았습니다.
방을 둘러보니 생수 네 병과, 화장지, 비누 등 어느 정도의 필수 생활용품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세끼 밥은 때마다 문밖에 놓아주고 있습니다.
참, 여기 머무는 동안 돈이 들지는 않습니다. 질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격리 조치여서 숙박비와 식사비 등을 따로 개인에게 청구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저의 계산대로라면 지난 22일 우한에서 나온 날로부터 2주가 되는 날은 2월 5일입니다. 어디서든 펼쳐 놓고 일을 할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 세상과 연결되는 스마트폰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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