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공포가 앞당긴 사상 첫 0%대 금리 시대

입력 2020-03-16 17:04   수정 2020-03-16 18:01

팬데믹 공포가 앞당긴 사상 첫 0%대 금리 시대
국제금융시장 혼란·공포…美도 제로금리로 전격 인하
금리하한 근접해 추가 인하는 신중할 듯…"추가인하 불가피"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정수연 기자 = 16일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전격적으로 낮추면서 한국도 0%대 기준금리 시대를 맞게 됐다.
저물가·저성장으로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되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예상 밖 경제 충격이 한은의 신중했던 정책 태도를 단숨에 뒤바꿨다.
한은이 이날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금리를 0.50%포인트 낮춘 것은 코로나19가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가 예상 밖의 큰 충격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 탓이다.
코로나19발(發) 경제 충격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수 있다는 우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례적인 긴급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연준은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응 조처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7천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기로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상황에 준하는 과감한 조처다.
연준은 이날 낸 성명에서 "코로나19가 커뮤니티를 훼손하고, 미국 등 많은 나라의 경제 활동에 피해를 줬다"면서 "글로벌 금융 여건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당초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국회 통과를 지켜본 뒤 17∼18일께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견됐지만, 코로나19 확산과 연준의 결정으로 더는 머뭇거릴 명분이 약해졌다.
지난달 27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 20여일 만에 임시 회의를 열어 '빅 컷'을 단행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한 셈이다.
금통위 내부에서 조동철·신인석 위원은 그동안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해왔지만, 나머지 다수 위원들은 부동산 시장 자극 우려 등 금융안정 상황을 고려해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금리가 연 0.75%로 내려오면서 통화정책 여력 측면에서 쓸 수 있는 '탄환'이 사실상 거의 소진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머물러 있고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여타 선진국처럼 '제로금리' 정책이나 양적완화 정책을 썼을 때 급격한 자본유출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유럽,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선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신흥국의 경우 기준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출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지는 '실효하한'이 존재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한은은 지난 4일 배포한 간부회의 후 보도자료에서 "실효하한이라는 것은 자본 유출 측면만을 고려하여 추정되는 것은 아니며, 실물경제 파급효과라던가 금융안정 측면의 부작용 등 여러 측면에서도 평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추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떠밀려 금리 인하를 했는데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게 더 우려스럽다"며 "2월 거시지표가 나오는 월말이 되면 금리 추가 인하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냐 플러스냐의 싸움인 것 같은데 다른 국가 정책당국의 자세보다 한국이 안이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리가 낮아져 돈이 더 많이 풀릴수록 생산적인 부문에 많이 쓰이기보다는 부동산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큰 점은 한은의 인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금리 인하 기간이 오래 유지되면 부동산 시장 및 신용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코로나19가 일시적인 충격일 경우 경기부양이 당장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충격과 금융시장 혼란이 이어질 경우 긴급 유동성 확대책 등 추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리인하 조치 외에도 채권을 대거 사들이고 대출을 늘려 28조원에 달하는 돈을 푼 바 있다.

p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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