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확산에 혼란 빠진 이탈리아…"사실상 전시 상황"

입력 2020-03-09 22:09   수정 2020-03-10 11:33

코로나19 대확산에 혼란 빠진 이탈리아…"사실상 전시 상황"
'레드존 확대' 정부 행정명령 초안 언론에 유출…남쪽 탈출 행렬
교도소에선 폭동까지…이탈리아 총리 "상황 악화하면 충격 요법"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오후 6시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7천375명, 사망자는 366명에 이른다.
지난달 21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지역에서 첫 지역 감염이 확인된 이래 16일간의 누적 수치다. 하루 평균 확진자는 461명, 사망자는 23명씩 발생하는 셈이다.
특히 최근 들어선 하루 기준 확진 및 사망자 증가 폭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우려를 키운다. 7∼8일 이틀 연속 하루 확진자 증가 규모가 1천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지에선 '국지적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고자 대응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지만 좀처럼 상황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러스 확산 거점인 북부 지역 이동 제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정부 행정명령안이 공식 발표되기 전 일부 언론에 새어나가 지역 사회가 술렁이는가 하면 교도소에선 수용자들이 가족 면회 제한 방침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키는 등 사회적 패닉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코로나19 차단에 사활 건 정부
이탈리아 정부는 8일 새벽 북부 롬바르디아주 전역과 에밀리아-로마냐·베네토·피에몬테·마르케 등 4개 주 14개 지역을 신규 '레드존'으로 지정하고 주민 이동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신규 레드존에는 롬바르디아 주도이자 이탈리아 경제·금융 중심지인 밀라노와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수상 도시 베네치아도 포함됐다.
지난달 22일 롬바르디아·베네토 11개 지역에 대해 1차 발효한 이동제한 지역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탈리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인 1천600만명이 이번 조처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추산됐다. 롬바르디아·에밀리아-로마냐·베네토 등 북부 3개 주는 이탈리아 전체 누적 확진자의 85% 이상, 사망자의 90% 이상이 분포한 지역이다.
이번 조처에 따라 가족을 만나거나 업무 또는 건강상의 이유 등을 제외하곤 이 지역을 드나들지 못한다. 레드존 지역 주민 역시 정부 허가 없이는 외부 이동이 제한된다.
이를 어기면 경찰에 체포돼 최고 3개월간 구금되거나 206유로(약 28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전국의 모든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 문화시설은 물론 헬스클럽과 수영장·문화센터·스키 리조트 등 다중시설도 모두 폐쇄된다. 로마의 상징인 고대 로마제국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도 임시로 문을 닫았다.
음식점과 주점 등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이 가능하지만 고객 간 최소 1m 이상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 조처는 일단 내달 3일까지 유효하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가 1861년 현재의 영토를 기반으로 통일국가를 수립한 이래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이동 제한령을 내린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현지 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탈리아 전역의 가톨릭 미사도 일시 중단됐다.
이탈리아주교회의(CEI)는 8일 로마를 비롯한 전국 교구에 공지문을 보내 정부 조처에 부응해 내달 3일까지 신자가 참석하는 모든 가톨릭 예식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전체 인구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국가에서 이 역시 초유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8일 주일 삼종기도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 생중계 방식으로 이를 집전했다. 통상 주일 삼종기도는 매주 일요일 오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수만명의 신자와 관광객들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된다.
교황은 오는 11일 일반 신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수요 일반 알현도 신자 참석 없이 인터넷 중계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는 9일부터 밀라노 말펜사 국제항공을 오가는 국제선과 국내선 운항을 모두 중단했다. 이 항공사는 밀라노 리나테 공항의 국내선만 운항할 예정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9일자 지면에 실린 현지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충격 요법'을 사용할 것이라면서 추가 대응 조처를 시사했다.



◇ 코로나19 위기감에 패닉…남부 탈출 행렬도
바이러스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배가되면서 주민들의 공포도 덩달아 고조되는 분위기다.
레드존을 확대한 행정명령안 초안이 공식 발표 수시간 전인 7일 저녁 현지 일부 언론에 새어나가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일부 대상 지역 주민이 일시에 남쪽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해 큰 혼잡이 빚어졌다.
남쪽으로 향한 이들 가운데 감염자가 있을 경우 바이러스가 추가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베르토 부리오니 밀라노대 교수는 "정부 대책이 목표한 것에 반하는 현상이 일어났다"며 개탄했다.
남부 캄파니아주의 살레르노 기차역에선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경찰들이 간밤에 롬바르디아 등에서 기차에 탑승한 승객들을 색출하고자 대기하는 진풍경도 목격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남부 풀리아주의 미켈레 에밀리아노 주지사는 페이스북에 "롬바르디아·베네토·에밀리아의 전염병을 풀리아로 가져오지 말아달라"며 "당신의 형제·자매, 조모, 삼촌, 사촌, 부모가 당신 때문에 감염될 수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의 우한·후베이성 봉쇄 조처를 벤치마킹한 이탈리아 정부의 레드존 확대가 큰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이동제한령을 내리면서도 철도·항공 등의 이동 수단은 풀어놨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든 이동 승객에 대해 검문·검색을 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동제한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롬바르디아·베네토 등 일부 지역은 정부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레드존을 확대 지정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교도소에선 폭동까지 발생했다. 북부 모데나·파도바, 중부 프로시노네, 남부 나폴리 등의 교도소에서 8일 오전 가족 면회 제한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나 일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모데나 교도소에선 교도관들을 제압하고 사실상 시설을 장악했으며, 이 과정에서 교도관 2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소 옥상에선 수용자들이 저지른 방화로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폭동 상황에서 외국인 수용자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탈리아 교정당국은 이들에게 외부 상처는 없으며 약물 과다 복용이나 지병 등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각 교도소엔 무장 경찰이 진입해 일단 상황을 진정시켰으나,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롬바르디아 등 일부 지역은 병상과 의료진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롬바르디아 주정부의 안토니오 페센티 긴급대응팀장은 지역 의료·보건시스템이 "붕괴 일보 직전"이라며 중환자실 병상 부족으로 병원 복도와 수술실, 회복실을 중환자실로 임시 개조해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롬바르디아 베르가모 지역 의사인 크리스티안 살라롤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에서처럼 환자 중에 누구를 치료하고 누구를 그냥 놔둘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계 주요 인사 가운데 연립정부를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의 니콜라 진가레티 대표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알베르토 리치오 피에몬테 주지사와 살바토레 파리나 군 참모총장도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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