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첫 확진 후 69일만…밀집 거주 등으로 '폭증' 우려
확진자 비중·치명률은 낮아…봉쇄·검사 확대 등 총력 대응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8일로 5천명을 넘었다.
코로나19의 다음 '핫스폿'(집중발병지역)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도에서도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불어나는 분위기다.
이제 인도에서도 코로나19 폭발적 증가라는 '지옥문'이 열린 것인지, 인도가 지금처럼 비교적 선방해 나갈 수 있을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인구 대비 적은 확진자 수…이유는 검사 수 때문?
8일 인도 보건·가족복지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5천194명(사망자 149명)이다.
지난 1월 30일 남부 케랄라주에서 처음으로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한 이후 69일 만이다. 지난달 29일 누적 확진자 1천명을 넘어선 뒤 열흘 만에 5배로 증가한 것이다.
최근 증가세가 가파르기는 하지만 13억5천만명에 달하는 인구 규모를 고려하면 아직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열악한 의료 인프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려운 생활 환경 등을 고려하면 인도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공중보건 전문가 라마난 랙스미나라얀은 앞으로 3억 명에 가까운 인도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도의 확진자 수가 비교적 적은 것은 검사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계 서비스 사이트 월드오미터스에 따르면 인도의 코로나19 검사 수는 이날 14만293건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31일 4만2천788건과 비교하면 상당히 늘어났지만, 인구 규모를 고려하면 매우 적다.
100만명당 검사받은 이의 수로 환산하면 102명에 불과하다. 미국(6천291명), 이탈리아(1만2천495명), 한국(9천310명)과 비교하면 최대 120분의 1 수준이다.
인도도 100만명당 1만명꼴로 검사 수를 늘리면 확진자 수도 5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단순 추정이 가능하다.

◇ 확진자 비중과 치명률도 낮은 인도
그렇다면 검사자 중 확진자 비중과 치명률이 낮은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날 현재 인도 검사자 중 확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대 후반에 불과하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검사자 대비 확진자 비중이 각각 19%, 18%, 4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인도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시점은 미국, 유럽과 비슷했지만 지역 사회 내 감염자는 아직 매우 적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우려한 인도 정부가 초기부터 외국인 입국 금지, 국가봉쇄 등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방역 대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도는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자 2월 초 비자 무효화 조치를 통해 중국발 입국을 사실상 막았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보다 한발 앞선 조치였다.
이후에도 인도는 한국, 일본 등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확대했다.
지난달 25일부터는 '21일간의 국가봉쇄령'이라는 강도 높은 대책까지 도입했다. 인도처럼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전 국민의 생활을 한 번에 '셧다운'시킨 것은 상당히 파격적 조치였다.

인도의 바이러스 확산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더딘 것은 최근 섭씨 30도를 넘는 더운 날씨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플루엔자(계절 독감)나 감기 바이러스 등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춥고 건조한 겨울에 왕성하고 기온이 올라가면 기운을 잃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중 고온다습한 싱가포르나 현재 여름을 보내는 남반구에서도 감염자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 소재 시러큐스대학의 브리타니 크무시 교수(공중보건학)는 CNN방송에 "코로나19가 인플루엔자나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계절성을 보일지 (아직은) 모른다"고 강조했다.
누적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명률이 낮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재 인도의 치명률은 2.9% 수준으로 이탈리아(12.6%) 등 유럽은 물론 세계 평균(5.7%)보다도 낮다.
이는 노령화된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강한 젊은 층의 비중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도의 25세 이하 젊은이들은 무려 6억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무시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종교집회·빈민가 등 곳곳에 지뢰밭
지금까지는 인도가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비교적 선방했지만 앞으로 상황은 크게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생활 환경에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엔 부적절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지난달 중순 뉴델리 니자무딘에서 열린 이슬람 종교집회 이후 확진자가 폭증했다.
좁은 공간에서 밀집한 상태로 기도, 설교 등이 진행됐고 집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인도 곳곳과 각국으로 되돌아가 감염 확산의 '거점'이 됐다.
인도 전체 확진자의 3분의1 가량이 이 행사 참석자와 관련된 것으로 추산된다.
봉쇄령 발동 이후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근로자 수십만명이 대도시에서 탈출, 전국 곳곳으로 돌아간 점도 바이러스 대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도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말 뉴델리, 뭄바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근로자 수십만명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서로 버스를 타겠다고 뒤엉키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는 완전히 무시됐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였다.
좁은 공간에서 별다른 위생 시설 없이 몰려 사는 빈민가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뭄바이의 '아시아 최대 슬럼가' 다라비에서는 확진자 가운데 사망하는 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면적이 5㎢가량인 다라비에는 100만여명이 몰려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화장실 등 위생 시설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밀집해 생활하기 때문에 감염병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상태다.
뭄바이는 물론 뉴델리 등 다른 대도시의 빈민가에서도 여러 명의 확진자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재택근무나 자가격리는 대부분의 인도인에게 상상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 방역 총력전…검사 늘리고 의료 장비 보강
인도 정부도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우선 검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 확산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감염자를 정밀 추적할 방침이다.
정부 유관 기관인 인도의학연구위원회(ICMR)는 최근 집단감염 예상 지역에 면역진단 방식의 신속진단키트를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신속진단키트는 혈액에서 특정 항체를 검출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15∼30분 내로 결과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도 정부는 수십만개 이상 신속진단키트를 대량으로 추가 구매할 계획이며 인공호흡기, 보호장구 등 의료 장비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확진자 폭증에 대비해 부족한 병상 수도 보강하는 분위기다. 노후 열차 2만량가량을 격리 시설로 바꾸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총리는 7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 모든 감염자를 찾아냈다"며 "우리도 검사를 대폭 확대하고 추적, 관리,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정부는 이와 함께 14일자로 끝나는 봉쇄령을 연장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15일부터 순차적으로 국가봉쇄령을 풀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일부 주 총리들과 연방 정부 장관들이 봉쇄령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인도 언론은 국가봉쇄령이 풀리더라도 집단 감염 우려 지역 봉쇄, 주 간 이동 통제, 주요 교통 서비스 제한 등의 조치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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