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길목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아놀속 도마뱀 분석 결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허리케인 길목에 있는 카리브해 섬들의 도마뱀들이 강한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가락의 빨판(toepad)이 크게 진화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섬들의 도마뱀이 본토의 비슷한 종에 비해 발가락 빨판이 크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런 특징이 허리케인이 촉발한 진화의 결과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조건에 의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밀릴 것이라는 게 통념이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 생물학과의 콜린 도니휴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도마뱀들이 허리케인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카리브해 터크스 케이커스의 12개 섬에 서식하는 '갈색아놀'로 알려진 아놀속 도마뱀 '아놀리스 사그레이'(Anolis sagrei) 개체군을 중심으로 플로리다에서 브라질 일대에 이르는 다른 아놀속 188개종과 비교했다
연구팀은 약 70년에 걸친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북대서양 및 북태평양 허리케인 자료와 아놀속 도마뱀 발가락 빨판 측정 자료를 활용했다.
도니휴 박사는 지난 2017년 여름 시속 270㎞가 넘는 강풍을 가진 5등급 허리케인 어마와 마리아가 2주 간격으로 터크스 케이커스의 섬들을 강타하기 직전에 아놀속 도마뱀 개체군을 조사했으며,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생존 도마뱀들과 비교해 발가락의 빨판이 커진 것을 확인했다.
발가락 빨판이 큰 도마뱀들만 강한 바람에 날아가 죽지 않고 생존한 셈이다.
이런 신체적 특징은 1년 뒤 이어진 연구에서 다음 세대 도마뱀에서도 확인됐다. 이들의 발가락 빨판이 허리케인이 강타한 직후 생존 도마뱀에게서 측정된 것만큼 커진 것이다.
연구팀은 허리케인이 잦을수록 평균적으로 발가락 빨판도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도마뱀의 발가락 빨판이 무한정 커지지 않은 것은 먹이활동이나 짝짓기, 포식자 회피 등 다른 활동을 할 때 유리한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작용하며 균형을 맞춘 결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허리케인이 갈색아놀에 영향을 주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 진화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면서 "이런 영향은 12개 섬에 서식하는 아놀속의 근연종이 아닌 다른 종에서도 전체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논문 공동저자인 같은 대학 생물학과의 조너선 로소스 교수는 "허리케인이 개체군이나 종을 비교했을 때 드러날 만큼 강력하고 오래 지속하는 영향을 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었다"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고 도니휴 박사가 발견한 패턴은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도니휴 박사는 "이는 도마뱀만의 문제가 아니며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는 다른 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예상할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가 식물이나 나무, 달팽이 등 이 지역에서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는 다른 종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자료 수집이나 옛 자료의 새로운 분석을 촉발하길 바란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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