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자연이 주는 色의 향연 ③태안 천리포수목원

입력 2020-06-06 08:01   수정 2020-08-06 14:46

[imazine] 자연이 주는 色의 향연 ③태안 천리포수목원
바다와 수목이 어우러진 서해안의 푸른보석



(태안=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태안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천리포수목원은 자연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빛깔을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갖가지 꽃과 나무가 푸른빛을 머금은 바다와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 '색의 마술사' 삼색 참죽나무
정문 입구에서부터 독특한 빛깔의 나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색빛이 감도는 줄기에 오묘한 핑크빛 잎사귀가 가득 달려있다.
천리포 수목원의 명물 중 하나인 삼색 참죽나무(참중나무)다. 참죽나무의 일종인데 계절에 따라 세 가지 색상으로 변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



봄이 되면 쭉 뻗은 줄기에서 짙은 자줏빛 새순이 돋아난다. 이 빛이 점점 옅어지면서 초여름 잎사귀는 노란색으로 변하고, 한여름이 되면 색이 짙어져 평범한 초록색으로 바뀐다.
수목원을 찾았던 5월 중순의 잎새는 자줏빛이 옅어지고 노란빛이 조금씩 나타나면서 오묘한 붉은빛을 띠었다. 이때쯤이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시기일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참죽나무의 색이 해풍이 부는 곳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태안 내에서도 바닷바람이 닿지 않는 지역에서는 계절에 따라 오묘하게 변하는 빛깔을 관찰하기 힘들다고 한다.



◇ 희귀종 가득한 식물의 천국
천리포수목원은 1만6천여 분류군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국내 최다 식물 종을 보유한 수목원답게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든 희귀 식물이 곳곳에 가득하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넓은 연못이 눈 앞에 펼쳐지고 주변으로 갖가지 꽃이 저마다 빛깔을 뽐낸다.
보랏빛 아이리스(붓꽃)와 알리움, 노란 창포, 진분홍빛 모란, 순백의 산딸나무꽃과 난생처음 보는 검은 튤립까지. 수목원에서는 어떤 색이든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분홍빛 만병초였다. 5월부터 6월까지 수목원 곳곳을 장식하는 꽃 중 하나다.
생김새가 철쭉과 비슷하지만, 가지 끝에 커다란 꽃이 10∼20송이씩 둥글게 뭉쳐 피어 훨씬 더 화려하고 탐스럽다. 만 가지 병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만병초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연못 왼쪽의 동백원에는 동백 꽃송이들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반쯤은 땅에 떨어졌지만, 반쯤은 여전히 가지 끝에 매달려 고운 빛깔을 뽐내고 있다.
겨울꽃으로 알고 있던 동백이 5월 중순까지 피어 있어 신기했다.
바다와 접한 천리포수목원은 연중 온화한 해양성 기후 덕분에 1∼2월에는 꽃이 일찍 피고 3월 이후에는 다른 지역보다 꽃이 늦게 피어 봄을 더 길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보통 1월부터 피기 시작해 3∼4월이면 지는 동백꽃도 이곳에서는 12월부터 피기 시작해 4∼5월 절정을 이룬다. 운이 좋으면 6월까지도 동백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백은 개화도 아름답지만, 낙화가 더 신비한 꽃이다. 수정을 마치면 꽃잎이 시들기도 전에 꽃송이째 툭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일까. 절정의 시기 눈물처럼 툭툭 떨어진 꽃송이들은 나무에 달린 꽃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해 보인다.



동백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천리포 수목원을 대표하는 꽃은 목련이다. 전 세계에 1천여 분류군의 목련이 있는데, 이 중 800여 분류군을 보유하고 있다.
목련은 대개 3월이나 4월 새하얀 꽃을 피웠다가 이내 꽃잎을 떨궈버린다. 가을 즈음 맺기 시작한 꽃봉오리를 가지 끝에 매달고 겨울을 나지만, 정작 개화 기간은 며칠 되지 않아 아쉬움을 더하는 꽃이다.
하지만 다양한 재배품종을 보유한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도 목련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시기에도 분홍색 목련, 노란색 목련 등 주변에서 보기 힘든 빛깔과 형태의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린 상태였다.



여름에 피는 목련인 리틀젬 태산목도 있다. 6월 말 꽃을 피워 날씨가 좋으면 가을까지도 개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5월 중순이라 아직 터지지 않은 태산목의 꽃봉오리는 보송보송한 솜털로 싸여 있었다. 두툼한 잎사귀의 뒷면 역시 마치 스웨이드처럼 갈색 털로 덮여 있다.
가을에 맺은 꽃봉오리와 푸른 잎을 가지에 매단 채 차디찬 겨울을 보낸다고 하니 솜털은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월동복인 셈이다.



◇ "나무가 행복하면 그곳에 오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리틀젬 태산목이 서 있는 곳은 천리포수목원의 설립자인 민병갈 박사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민 박사는 생전에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라. 묘 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2002년 작고 당시 수목원 측은 고인의 유해를 수목원 비공개지역에 안치했다가 서거 10주기인 2012년 고인이 특히 아꼈던 리틀젬 태산목 아래로 옮겼다.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민 박사는 1979년 귀화해 한국은행 고문 등을 지낸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1962년 만리포 해수욕장에 놀러 왔다가 주민의 요청으로 이 지역 땅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 60만㎡(18만평)로 불어났고, 1970년부터 나무를 심으며 수목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땅을 조금만 파도 염분 섞인 흙이 나오던 박토를 가꾸고, 외국에서 다양한 묘목과 종자를 들여와 심으면서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았다.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였다.



민 박사의 나무 사랑은 유별났다고 한다. 사람들이 보기 좋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나무를 다듬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가 행복하면 그곳에 오는 사람도 더불어 행복해진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재단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느 수목원과 달리 천리포수목원이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설립자의 신념이 이어져 내려온 덕분이다.
천리포수목원은 교육·연구 목적 이외에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던 '비밀의 정원'이었지만, 2009년부터 빗장을 풀고 약 60만㎡(18만평)에 달하는 7개 관리지역 가운데 6만6천㎡(2만평) 규모의 '밀러가든'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설립자가 사용했던 수목원 내 집무실은 카페와 갤러리 등을 갖춘 민병갈 기념관으로 바뀌었고, 그와 직원들이 거처로 썼던 기와집은 방문객을 위한 숙소로 사용된다.



초가집 모양의 민병갈 기념관 2층에 올라가면 수목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수목원 중앙의 큰 연못은 척박했던 토양에 물을 대기 위해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다. 6월이 되면 형형색색의 수련이 한가득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기념관에서 내려와 나무가 무성한 숲길을 지나니 고운 모래펄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반대편에서는 아름다운 새소리와 함께 꽃내음이 풍겨온다. 고운 빛깔의 수목과 청량한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천리포수목원만의 매력이다.
바다를 향해 나무 의자가 줄지어 있는 노을언덕에서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수목원을 마주하고 떠 있는 조그만 섬 덕분이다. 낭새섬이라 불리는 이 섬 역시 천리포수목원의 소유지다.
조수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바다가 갈라지면서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2시간 정도면 섬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비공개지역이라 아무나 섬 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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