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희생자 기억' 약속 저버리고 역사 왜곡(종합)

입력 2020-06-14 21:05   수정 2020-06-14 21:09

일본, '강제징용 희생자 기억' 약속 저버리고 역사 왜곡(종합)
"귀여움 받았다, 채찍질 없었다, 현금급여 따박따박 받았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산업화 성과만 과시…징용 피해는 외면
아베 정권 '역사 수정주의' 영향…한일관계 악영향 미칠 듯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이 자국의 근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징용 희생자를 기억하는 조처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
오는 15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 내용을 보면,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화 성과를 과시하는 내용 위주이고,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의 아픔을 달래는 내용은 없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어서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특파원 공동취재단은 일반 공개 하루 전인 14일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방문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이 센터를 지난 3월 31일 개관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일반 공개가 미뤄졌다.

1천78㎡ 면적의 센터에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23곳이 소개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2015년 일본 메이지 산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강제징용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는 사토 구니(佐藤地) 주(駐)유네스코 일본대사의 발언이 전시돼 있었다.
사토 대사는 당시 산업유산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를 존중한다면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정보센터 설치를 비롯해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 관련 어두운 역사에는 일본이 눈을 감고 있다는 이유로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에 반대하자, 정보센터를 설립해 희생자를 기리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센터에는 메이지 시대 철강과 석탄 등의 분야에서 이룬 일본의 산업화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일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가 발생한 대표적인 장소인 군함도의 탄광을 소개하면서 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재일교포 2세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 씨의 증언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스즈키 씨는 동영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채찍으로 맞았냐' 질문에도 "당시 조금이라도 탄을 많이 캐는 것이 나라의 정책이었다"며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스즈키 씨의 아버지는 군함도 탄광촌에서 '오장'(팀장급 관리자)으로 일했고, 그는 아버지의 경험에 기초해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중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나가사키(長崎) 조선소에서 일한 대만 사람이 "급여를 정확히 현금으로 받았다"라고 증언하는 내용과 함께 징용 노동자의 급여 봉투 등이 전시돼 있었다.
군함도나 나가사키 조선소 등 징용 현장에선 '노예노동'이 없었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도 없었으며, 월급도 제대로 지급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관계자의 증언을 활용한 셈이다.

'징용 관계 문서 읽기'라는 전시에선 ▲ 국민징용령 ▲ 조선인 노무자 활용에 관한 방책 ▲ 반도인 노무자 이입에 관한 건 ▲ 등의 문서를 소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 제도를 언급하고 있을 뿐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고 사토 대사가 인정한 사실이나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내용은 역시 전시되지 않았다.
공동취재단에 배포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72쪽짜리 책자와 21쪽짜리 소책자에도 강제동원 피해 관련 내용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 메이지 산업유산 중 군함도를 비롯해 야하타(八幡) 제철소, 나가사키 조선소, 다카시마(高島)와 미이케(三池) 탄광 등에는 한국인(조선인) 3만3천400명이 강제 동원됐다.
특히 군함도에서는 1943∼1945년 500∼800명의 한국인이 강제 노역을 했고, 12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가 당초 약속과 달리 강제징용 피해를 외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언론에서도 비판에 제기됐다.
교도통신은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정설을 '자학사관'으로 보고 반론을 펴려는 의도가 있다면서 "과거의 사실을 덮고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전시가 포함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일반에 공개함에 따라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15일 산업유산정보센터 일반 공개에 맞춰 일본 정부의 '역사 도발'에 대한 외교적 조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유산정보센터 국민회의라는 일반재단법인이 운영하나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설립됐다.
ho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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