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다시 모스크 되나…성소피아의 기구한 운명

입력 2020-07-03 07:07  

[특파원 시선] 다시 모스크 되나…성소피아의 기구한 운명
900년 간 동로마 대성당…동로마 멸망 후 500년간 모스크
공화국 수립 후 박물관으로 개방…'세속주의' 상징
현 집권당·이슬람주의 세력 모스크 변경 추진
미국·그리스·정교회 등 모스크 전환 움직임에 반대
터키 최고행정법원 "2주 내 성소피아 지위 결정할 것"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서 성소피아 대성당의 헌당식이 거행된 537년 12월 27일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능가한다며 외친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이곳만은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
916년이 흐른 1453년 5월 29일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성소피아에 들어선 후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는 당시 관례대로 사흘간 약탈을 허락했지만, 성소피아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나머지 이 성당만은 손을 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대신 메흐메트 2세는 약 900년간 기독교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성소피아를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개조했다.
비잔티움 예술의 결정체인 성화와 모자이크를 회칠로 덮고 그 위에 '아라베스크'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이슬람 문양을 그렸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황실 모스크로 사용되던 성소피아는 약 500년 뒤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옷을 갈아입게 된다.
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성소피아 복원작업에 착수하면서 회벽 아래 감춰진 비잔티움 예술의 정수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그러나 회칠을 제거하다 성화와 모자이크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고, 회벽에 그린 아라베스크 문양도 500년 된 이슬람 문화재인 만큼 이슬람 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國父)로 불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34년 성소피아를 두 종교가 공존하는 박물관으로 변경하고 성소피아에서 일체의 종교 행위를 금지했다.
이후 성소피아 박물관은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연간 약 400만명이 방문하는 터키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됐다.



그러나 성소피아의 기구한 운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슬람을 '타도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로 여긴 아타튀르크는 세속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아타튀르크는 성소피아 박물관 개관식 날 신발을 벗지 않고 입장했다. 이는 강력한 세속주의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인식됐다. 성소피아가 모스크일 때는 신발을 벗어야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정의개발당(AKP)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터키의 세속주의는 점차 퇴색했다.
더구나 2016년 군부의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가 커지면서 성소피아를 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은 비정상적인 의견이 아니다"라며 보수 이슬람 층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터키 정치 분석서인 '에르도안의 제국' 저자이자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의 중동정책연구소 국장인 소네르 차압타이는 성소피아 논란에 대해 "단순히 건물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차압타이 국장은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세속화를 강조하기 위해 성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변경했다"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에르도안은 정확히 그 반대를 하려 한다"라고 강조했다.



터키 정부가 실제로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한 반대 여론이 제기됐다.
정교회의 수장인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겸 세계총대주교는 "박물관으로서 성소피아는 민족과 문화의 평화로운 공존과 대화, 기독교와 이슬람 간 상호이해와 연대를 의미하는 상징이자 장소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소피아가 모스크로 전환될 경우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이슬람에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웃 국가이자 역사적 '앙숙'인 그리스는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니코스 덴디아스 그리스 외무장관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에 깊은 상처를 줄 일을 하지 않기 바란다"며 "성소피아는 많은 일을 견뎌왔고 결국 제 위치로 돌아올 것이지만, 터키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도 성소피아의 박물관 지위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성소피아는 종교와 전통, 역사의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의 모범 사례"라며 "모든 사람이 성소피아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은 이 놀라운 문화유산이 서로 다른 종교와 전통,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소피아 인근 상인과 여행업계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우려도 제기된다.
이스탄불 최대의 관광 명소인 성소피아가 박물관이 아닌 모스크로 변경될 경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정부는 성소피아가 모스크로 변경되더라도 관광객에게 개방할 것이라는 입장이나, 현재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성소피아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는 현재도 예배 장소로 사용되는 까닭에 관광객은 정해진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으며, 여성은 반바지·반소매 착용이 금지되며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해야 한다.



이처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고행정법원은 2일(현지시간) 성소피아의 지위와 관련한 최종 결정을 2주 안에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 현지서는 성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터키 최대 일간 휘리예트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최고행정법원이 2016년 쿠데타 발발 4주년인 7월 15일에 성소피아의 모스크 전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1천500년의 세월을 견디며 주인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성소피아가 다시 한번 운명의 전환점을 맞이할지 주목된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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