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리 가본 용산공원…116년만에 담장 허문 미군 장교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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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21 16:30  

[르포] 미리 가본 용산공원…116년만에 담장 허문 미군 장교 숙소

[르포] 미리 가본 용산공원…116년만에 담장 허문 미군 장교 숙소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여러분 오늘 여기 들어올 때 신분증 안 보여주고 그냥 들어오셨죠? 이곳이 앞으로 100만평 규모로 조성될 용산공원 중 제일 먼저 국민에게 돌아오게 될 구역입니다."
116년 동안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금단의 땅이던 용산기지 일부가 다음 달부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활짝 열린다.
국토교통부 기자단은 내달 1일 용산미군기지 중 가장 먼저 일반에 공개되는 장교숙소 5단지 부지를 국민개방에 앞서 20일 둘러봤다.
기자단 팸투어에는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동행했다.
유 위원장은 "을사조약 1년 전인 1904년에 일제가 용산 일대를 위수지역으로 선포하고 군대를 들이면서 이후 116년 동안 이 지역은 민간인이 들어오지 못했던 곳"이라며 "올해 미군 장교숙소 3곳 중 1곳을 넘겨받아 담장을 허물어 이제는 국민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에게 용산공원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기 위해 장교숙소 5단지를 리모델링해 전시공간 등으로 꾸몄다"며 기자단을 현장으로 안내했다.
지하철 중앙선 서빙고역 건너편에 출입구를 낸 미군 장교숙소 5단지는 2∼3층짜리 주택 16동과 관리소, 탁아소 등 총 18동으로 이뤄져 있다.
1986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부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주택 16동(129채)을 지어 35년 동안 미군에 임대했고, 미군은 이를 장교숙소로 사용했다.
정부는 올해 1월 이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한 뒤 5개 동을 전시공간 등으로 개조하며 대국민 개방을 준비했다.
장교숙소 5단지는 지난 5월 서빙고역 쪽으로 난 부대 담장 중 15m를 허물어 새로 입구를 냈다.
이 입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안내라운지가 보였다. 안내동을 지나자 '새록새록'으로 이름 붙인 소박한 야외갤러리가 나왔다.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마련된 야외갤러리에는 과거 용산기지 주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 10점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용산 보병 78연대와 79연대가 주둔한 전경부터 해방 직후 남산과 용산기지 일대의 항공사진(1945년 9월), 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는 모습(1947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삼각지 일대 전경(1948년 9월) 등이 눈길을 끈다.
특히 옛 조선군사령부 일대 전경(1948년 9월)이라는 제목의 사진 속 건물은 해방 이후 미군이 7사단 사령부로 사용한 건물로, 용산기지 역사를 웅변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사통팔달의 용산기지가 일본군과 미군의 주둔지로 차례로 활용된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건물인 셈이다. 이 사진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용산역 일대 모습(1954년3월)이나 한국전쟁 직후 유엔군이 전후복구와 원조 활동을 하는 모습(1953년12월) 사진은 전쟁의 참상과 함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한국의 현재 발전상도 함께 생각하게 했다.


탁 트인 야외갤러리에서는 미군 장교숙소 5단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타운하우스 풍의 2∼3층짜리 건물들이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 등 조경과 어우러져 여유로운 분위기를 냈다.
장교숙소 중 한 집은 '오픈 하우스'로 꾸몄다.
보수공사를 하지 않고 가구도 그대로 남겨 실제 미군 장교 가족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했다.
오픈 하우스로 들어서자 거실과 주방, 놀이방 등으로 사용한 1층과 방 4개가 있는 2층이 4∼5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적당한 넓이로 느껴졌다. 거실과 방이 넓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많은 미군 가족이 거쳐 간 장교숙소는 시대에 따라 용산레거시, 로링빌리지, 블랙호크빌리지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 생활을 기억하는 미군 가족이 SNS에 올린 글도 한쪽 방에 소개돼 있었다.


"블랙호크빌리지는 아름다운 추억이 너무 많아 고마운 곳이다.", "용산은 내게 있어 '제2의 고향'이다. 오늘날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내게는 추억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다.", "이 멋있는 나라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내 직업에 자긍심을 느낀다."
아이들이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하는 사진, 야외에서 여러 가족이 바비큐 파티를 하는 사진, 거실에서 남매가 피아노를 치는 사진 등 용산기지에서 생활한 미군 가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오픈 하우스를 나와 잔디밭을 지나자 용산의 담장 일부를 허물고 남은 벽이 전시된 '상징존'이 나왔다.
116년간 금단의 땅이던 용산기지가 담장을 허물고 국민을 위한 공원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했다.


바로 옆 숙소 부지의 가장 안쪽에는 용산기지의 과거와 용산공원의 미래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마련됐다.
전시관에는 용산기지를 50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대형 모형이 전시됐다. 전체 용산기지의 지형과 건물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관 안내를 맡은 용산문화원 김천수 역사문화연구실장은 "모형을 보면 일단 용산기지가 참 넓고 건물이 많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모형 속 건물들에는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고 삶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냉전과 분단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수많은 지층과 단면이 켜켜이 녹아들어 있다. 용산기지에 얽힌 근현대사를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라며 말을 줄였다.
전시관 내 영상관에서는 4분 30초짜리 영상을 상영했다.
한반도의 요충지였던 용산이 개항과 함께 수난의 역사를 겪는 내용으로, 미래 용산공원 청사진까지 담겨 있었다.


영상에는 ▲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치며 군사기지로 강제 수용 ▲ 1945년 광복 후 미군기지로 활용 ▲ 1952년 한국전쟁 중 미군에 공여 ▲ 1966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 2003년 한미 정상 간 용산기지 평택 이전 합의 ▲ 2006년 용산기지 국가공원화 선포 ▲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 ▲ 2011년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수립 ▲ 2016년 용산 미군기지 평택기지로 이전 시작 등 용산기지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아울러 오랜 시간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용산기지가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청사진도 담겼다.
정부는 21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공원부지 첫 개방 행사를 열고,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용산공원 조성계획안을 공개했다.
유홍준 위원장은 "용산기지는 국민을 위한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면서 "참 역설적이게도 100년 넘게 군대가 주둔하면서 이 땅이 보존된 측면이 있다. 만약 그냥 뒀다면 아파트를 짓거나 개발하지 않았겠는가. 오래 참고 기다린 덕에 서울의 허파 같은 용산공원이 선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d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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