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웨딩드레스 세계 최대 공장 가보니…1천400종 손 제작

입력 2020-08-26 06:06  

[잘란 잘란] 웨딩드레스 세계 최대 공장 가보니…1천400종 손 제작
인도네시아 수카부미서 모리리 드레스 생산…한국인이 경영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웨딩드레스 400종을 포함해 신부 들러리용, 파티용 등 1천400종의 드레스를 주문만 하면 뚝딱 손으로 만들어내는 공장이 인도네시아에 있다.
직원 4천명과 5천명의 외주 인력이 연간 30만장의 드레스를 만들어내기에 '세계 최대 웨딩드레스 공장', '세계 최대 핸드메이드 드레스 공장'으로 꼽히는 이곳을 한국인들이 경영한다.



2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1시간40분 떨어진 서부 자바주 수카부미의 켄리인도네시아(Kenlee Indonesia) 제2공장에 도착하니, 2만㎡ 널찍한 부지에 3층짜리 생산동 건물과 창고 2개가 보였다.
미국 유명 드레스 회사 '모리리'(Morilee)가 전 세계 5천개 매장에서 판매하는 드레스 중 60%를 켄리인도네시아가 3군데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중국에서 만든다.
켄리인도네시아의 오승현(58) 전무는 "한국은 웨딩드레스를 빌려 입지만, 미국·남미·유럽에서는 직접 사서 입는다"며 "고객이 현지 매장에서 드레스 스타일과 색깔을 고르고 사이즈를 재면 인도네시아에 주문이 전달돼 빠르면 2주, 통상 8주, 길게 걸리면 12주 안에 만들어 항공으로 배송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봉제 공장은 몇만장씩 같은 옷을 만들어 내지만, 우리 공장은 매일 각기 다른 드레스 수 백벌을 주문받고 바로바로 만들어낸다"며 "기존 봉제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소량, 다품종, 빠른 배송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덧붙였다.
켄리인도네시아는 한국인이 1992년 자카르타 외곽 보고르에 1공장을 지었고, 이후 수카부미 2공장, 중부 자바 뜨갈에 3공장을 만들었다.
현재 총괄 사장 박성근 사장과 오승현 전무 등 3명이 경영하고, 한국인 디자이너 음숙이 실장 등 2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직원은 모두 인도네시아인이다.
1천400종의 드레스를 주문 즉시 만들기 위해 공장 창고에는 무려 800만 달러(95억원) 상당의 천과 실, 비드(구슬), 레이스 등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동안 비드·자수가 많이 들어간 웨딩드레스가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레이스가 달린 심플한 디자인이 유행한다고 한다.



드레스 만드는 공정을 직접 순서대로 따라가 보니, 한 벌당 3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됐다.
고객이 주문한 드레스 모델에 따라 옷본을 종이로 뽑아내 해당 드레스에 필요한 안감·겉감 등 필요한 천을 맞춰서 잘라낸 뒤, 차례로 꿰매고, 비드·자수를 붙이고 지퍼를 달면 대략 완성된다.
그리고서 5차례에 걸쳐 검사, 보수를 반복하면서 드레스를 최상의 상태로 만든 뒤 포장한다.



오 전무는 "기계화된 공정이 아니라 전부 사람 손으로 만들다 보니,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검사해 보면 부족한 부분이 보여 보완을 하게 된다"며 "꼼꼼히 검사해서 배송하기에 고객이 불만족을 표시하는 경우는 5천벌 중에서 1벌이 될까 말까 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공장이 만드는 드레스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다"며 "웨딩드레스의 경우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입는 옷이기에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장을 돌아보니 재봉틀로 자수를 만들어내는 작업대를 빼고는 대부분 여성 직원이었다.
전체 직원의 95%가 여성이라고 한다. 이들은 철저히 업무를 나눠 천을 자르는 사람, 잘린 천을 드레스 별로 분류해 배분해 주는 사람, 마네킹을 놓고 드레스 천을 꿰매는 사람, 바닥에 앉아 비즈를 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공간에서 바쁘게 손을 놀렸다.
박자가 빠른 음악이 공장 전체에 흘러나와 흥겨운 분위기 속에 작업이 이뤄졌다.



1992년 켄리인도네시아가 설립될 때부터 28년간 근무해온 수미(43)씨는 "웨딩드레스, 드레스를 만드는 일 자체가 즐겁다"며 "이 공장을 다니면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등 청춘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해준다면 언제까지고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며 웃음 지었다.
모리리의 드레스는 미국 등에서 120달러 정도부터 2천 달러 이상까지 팔린다.
통상 드레스에 비드와 자수가 많이 들어갈수록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값도 비싸다. 외주 인력들은 바로 이 비드와 자수를 꿰매는 작업을 대부분 담당한다.



봉제 작업장의 맨 앞자리 높은 단상 위에는 오 전무의 책상이 놓여 있었다.
오 전무는 사무실이 아닌 작업 현장에 앉아 끊임없이 지시하고, 판단하고, 때로는 야단을, 때로는 고충을 들어주고 있다.
1996년 켄리인도네시아로 이직한 오 전무는 매일 오전 5시30분 가장 먼저 공장에 도착하고, 오후 8시께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과 대만에도 드레스 생산공장들이 있지만, 한 번에 200여종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 1천400종을 생산하려면 직원 관리, 공정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봉제공장과 달리 타이머로 직원별 업무량을 측정할 수 없다. 핸드메이드 드레스라서 어떤 작업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고, 어떤 작업은 복잡하다"며 "결국 직원 개개인이 충성심을 가지고 맡은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려면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같이 호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언어가 통해야 직원들 깊은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며 처음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뒤 인도네시아 가요 가사를 외우고 이슬람 문화를 공부했던 기억을 강조했다.
켄리인도네시아 공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을 받고 있다. 결혼식이 줄면서 주문량이 평년대비 50% 밑으로 떨어져 직원 수도 불가피하게 줄였다.
오 전무는 "우리 회사에 어릴 적 들어와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워 할머니가 된 직원도 있다"며 "코로나 사태로 지금은 잠시 힘들지만, 다시 드레스 주문이 늘어나면 직원 고용을 예전처럼 되돌릴 것"이라고 희망을 밝혔다.




noano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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