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피해 조선인 추도식에 올리버 스톤 감독 메시지

입력 2020-09-01 15:12  

간토대학살 피해 조선인 추도식에 올리버 스톤 감독 메시지
스톤 "일본 우익이 역사 왜곡 움직임을 강화하는 것에 실망"
도쿄지사 4년째 추도 메시지 안 보내…우익단체 맞불 위령 집회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역사적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vs "6천명 학살은 거짓, 징용공 강제 연행도 거짓!"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양심 세력과 어두웠던 과거를 은폐·축소하고자 하는 우익세력이 1일 간토(關東)대지진 97주년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대립했다.
일조(日朝)협회 도쿄도(都)연합회, 일본평화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실행위원회'는 이날 스미다구(區)에 있는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서 위령 행사를 열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하는 간토 지역을 강타한 규모 7.9의 초강력 지진을 말한다.
10만명가량의 인명피해가 난 이 지진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에 살던 조선인 수천 명 등이 일본의 자경단원, 경관, 군인의 손에 학살됐다.
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르면 학살된 조선인 수는 6천661명에 달한다.



일조협회는 이 사건을 후세에 전해 교훈으로 삼기 위해 간토대지진 희생자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공습 피해자의 유골이 함께 안치된 도쿄도 위령당 옆의 요코아미초 공원에 1973년 추도비를 세우고 해마다 그 앞에서 추도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고려해 일반인을 배제하고 시민단체 관계자들만 참석하고 취재진의 접근만 허용한 가운데 열렸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이날 오전 10시 요코아미초 공원 내의 위령당에서 도쿄도위령협회 주최로 시작된 간토대지진 희생자 추모 법회에는 "재해와 전쟁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1시간 후 위령당 바로 옆에서 열린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에는 2017년 이후 4년째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고이케 지사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6천여명이 학살당했다는 추도비의 내용이 부풀려졌다는 우익 진영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는 첫 임기를 시작한 이듬해인 2017년 9월 이와 관련한 도의회 답변을 통해 "이 건은 다양한 내용이 사실(史實)로 씌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 명백한 사실(事實)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이례적으로 미국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이 메시지를 보내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 진영의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스톤 감독은 주최 측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미국인은 일본의 40년에 걸친 조선반도의 잔혹한 식민지 지배를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간토대지진 후의 유언비어로 선동당한 군, 경찰, 자경단에 의해 수천 명이나 되는 조선인 등이 학살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부 일본인이 이런 무시무시한 부정의를 기억하고 반성하며 대학살 피해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연다는 얘기를 듣고 힘을 얻고 있다"면서 도쿄도 지사를 포함한 일본의 우익적 역사 부정주의자들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는 것에 실망한다고 밝혔다.
스톤 감독은 또 "역사적 진실을 위해 싸우는 당신 같은 분들과 연대를 강고히 할 것"이라면서 "증오 범죄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주최 측 관계자는 스톤 감독이 일본인 평화운동가인 노리마쓰 사토코 씨를 통해 이날 행사 소식을 듣고 피터 쿠즈닉 아메리칸대학 교수와 함께 공동명의로 추도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작가인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 씨는 "간토대지진 당시의 학살을 없었던 일로 하려는 태도는 앞으로 또 학살을 반복하겠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폭력 의사를 철저히 부인한다는 사실을 오늘 확인하고 싶다"는 메시지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일본 우익 단체인 '간토대지진 진실을 전하는 모임, 소요카제(산들바람)'는 이날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에 인접한 요코아미초 공원 한쪽에서 양심 일본인들의 거센 항의 속에 맞불 위령 행사를 열었다.
작년 행사 때 '뻔뻔한 재일조선인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살해됐다'는 등의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를 일삼아 물의를 일으켰던 이 모임 소속 회원들은 "6천여명 학살은 거짓"이라며 일본인의 격을 떨어뜨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제 때 '징용공'(징용 피해자)이 강제 연행됐다는 주장도 거짓이라고 외쳤다.
소요카제는 올해 행사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도쿄도의 집회 허가를 받았다.
소요카제를 규탄하기 위해 이날 자발적으로 모인 일본 시민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집으로 가라' '소요카제의 위령제 목적은 괴롭히기'라는 문구 등이 적힌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도쿄 경시청은 이날 요코아미초 공원 주변에 경찰관을 대거 배치하고 바리케이드를 둘러치는 방식으로 충돌 사태를 막았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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