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왜 '눈도장' 기시다 대신 '복심' 스가를 선택했나

입력 2020-09-04 12:12  

아베는 왜 '눈도장' 기시다 대신 '복심' 스가를 선택했나
'약체 후계 밀다가 라이벌에 당할라' 판단에 차선책으로
이시바 '아베 정권 사학비리 의혹 재조사' 거론 우려한 듯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조기 사임 의사를 표명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후임 총리로 사실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밀어주기로 한 배경이 주목된다.
아베는 애초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시다에 대한 지지 표명을 거부하면서 '복심'으로 알려진 스가가 차기 총리 경쟁에서 단숨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기시다의 인기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가운데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차기 총리가 됐을 경우 닥칠 후폭풍을 우려한 아베 총리와 측근이 대안으로 스가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독주 체제에서 집권 자민당 정치인 대부분이 정권의 비위 의혹에 침묵하거나 동조했는데 반기를 든 상징적 인물이 이시바였다.
이달 14일 예정된 선거를 포함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4번째 도전하는 이시바는 과거 두 차례의 선거에서 아베와 대결했다.
그는 자민당이 옛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기 직전인 2012년 9월 총재 선거 때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아베에게 석패했다.
이시바는 2018년 9월 총재선거 때 아베와 맞대결했으나 패했다.
아베는 2012년 12월 정권 출범 때 이시바에게 자민당 2인자인 간사장 자리를 주면서 포섭했고 2014년 9월 개각 때는 그를 지방 활성화를 담당하는 특임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으나 정권 후반부로 가면서 둘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결국 이시바는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면서 내각을 떠나 파벌을 새로 만들었다.
근래에는 사학재단과 권력이 유착했다는 지적을 산 모리토모(森友)학원 및 가케(加計)학원 문제를 거론하는 등 아베 정권의 실정에 날을 세웠다.
정권 후반기에 이시바를 철저히 냉대한 아베는 퇴임 후 이시바가 권력을 잡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물론 맹우(盟友)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포스트 아베' 주자로 적임이라고 일찍부터 판단한 인물은 기시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시다의 지지율은 저조했다.
아베 정권 비판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이시바는 유권자를 상대로 한 주요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2위와 큰 차이로 선두를 달렸다.
아베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직후인 지난달 29∼30일 교도통신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이시바는 34.4%, 기시다는 7.5%를 기록했다.
당내에서도 기시다의 역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가운데 소득이 감소한 가구에 선별적으로 30만엔(약 336만원)을 지급하는 구상을 추진했고 이에 맞춰 내각이 추가 경정 예산안까지 편성했다.

하지만 기시다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등이 나서 '모든 주민에10만엔(약 112만원) 지급'으로 뒤집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다.
기시다를 지원하면 아베 총리의 정적인 이시바가 권력을 쥘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 셈이다.
니카이와 손잡고 기시다를 견제하던 스가를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1일 총재 선거에 나가겠다는 뜻을 밝히러 온 스가에게 아소가 '언제부터 총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느냐'고 묻자 스가는 최근 소장파 측근 의원들을 모아 놓고 물어보니 대부분이 이시바를 꼽았다고 설명하고서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시바가 모리토모·가케 학원 문제나 재무성의 공문서 변조 행위 재조사를 거론하는 것과 관련해 스가는 "후임 후보로서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다시 들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전직 각료 중 한명은 아베 총리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차선책'으로 떠오른 것이 스가 관방장관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는 약체인 기시다를 밀었다가 라이벌이 이시바가 집권해 자신들과 관련된 비위 의혹을 파헤칠 가능성을 우려했고 스가는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 판세를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스가가 7년 8개월 동안 실세인 관방장관 자리를 지킨 것도 대세론의 기반이 됐다.
그는 파벌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으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구심력을 키웠다.
부대신이나 정무관으로 무파벌 소장파 의원을 심어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키웠고 작년 가을 자민당 인사 때는 아베 총리가 니카이를 간사장에 유임하도록 유도해 니카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
니카이가 이끄는 니카이파는 자민당 7개 파벌 중 가장 먼저 스가 지지를 결정해 '스가 대세론'의 물꼬를 텄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아베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날 밤 기시다가 파벌 간부들과 도쿄의 한 음식점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 파벌 명예회장인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자민당 간사장을 부른 것이 아베와 아소가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는 자민당 다선 의원의 분석을 전했다.
고가는 아베의 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지역구인 후쿠오카(福岡)현에서 세력 다툼을 벌여 아소와 매우 불편한 관계라는 것이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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