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일본] 코로나 난관 넘어 도쿄 무대에 선 '윤동주'

입력 2020-09-27 11:03  

[톡톡일본] 코로나 난관 넘어 도쿄 무대에 선 '윤동주'
연출자 "한일관계 안 좋지만 양국 국민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극장 수용인원 절반 이하로 줄이고 방역 조치…2천명 넘게 관람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어려움 속에 청년 시인 윤동주의 목소리가 도쿄의 한 무대에서 일본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일본 창작극 단체인 '청년극장'이 이달 중순 도쿄도(東京都) 시부야(澁谷)구 소재 공연장 '기노쿠니야(紀伊國屋)서던시어터 다카시마야'에서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을 상연했기 때문이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이 윤동주를 기억하는 많은 일본인과 만나기 위해 걸림돌은 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획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앞서 준비한 다른 연극이 연기되는 등 한때 공연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감염 확산세가 한풀 꺾이면서 극단 측은 관객을 극장 수용 인원의 절반 이하로 줄이고 조심스럽게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객석과 객석 사이에 한 자리씩 비우고 입장객 전원이 마스크 착용, 손 소독, 체온 측정 등의 방역 조치에 협력한 끝에 청년 윤동주가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이달 12∼20일 12차례 공연했는데 2천200명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직접 오기 어려운 이들은 온라인 중계 등으로 윤동주의 세계를 음미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 따라가며 윤동주의 삶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윤동주가 수감됐던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식민지 청년의 모국어에 대한 애착과 시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됐다.
검열관이 윤동주의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수감 중 의사들에게 정체불명의 약물을 맞으며 의식이 흐려져 가는 윤동주를 지켜보는 동안 전쟁 중 규슈(九州) 제국대가 재소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을 떠올리게 됐다.
문학적 상상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결합하면서 윤동주의 짧은 삶이 남긴 긴 울림과 제국주의 정책이 낳은 비극적 현실이 눈앞에서 교차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시라이 게이타 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도 전부터 잘 알고 있어서 언젠가 연극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별을 스치는 바람' 제작을 의뢰받아 원작을 읽기도 전에 승낙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하므로 연극을 보러 오는 이들 가운데 그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관객이 많았지만, 전혀 모르는 분들도 보러 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라이 씨는 관객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면서 "특히 마지막에 윤동주가 조선어로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나라와 나라로는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은 개인으로 연결되고 이런 연극을 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이 (한국에 던지는) 우리의 메시지"라며 한일 양국 국민이 "정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극장 관계자는 "윤동주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을 뿐 그에 관해 잘 알지는 못했으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일본에 골수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고 반응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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