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에도 한가위 온정…노숙인 불고기·잡채로 든든한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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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03 09:00   수정 2020-10-03 15:32

바티칸에도 한가위 온정…노숙인 불고기·잡채로 든든한 한끼

바티칸에도 한가위 온정…노숙인 불고기·잡채로 든든한 한끼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노숙인 벗' 박야고보 수녀와 봉사활동





(바티칸시티=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이 수많은 노숙인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의지할 가족도, 집도 없는 이들은 낮에는 어디론가 흩어져 구걸하고 밤에는 성베드로 광장 한쪽에서 잠을 청한다.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인 이들에게 매주 목요일 저녁은 가장 기다려지는 때이다.

한국 가톨릭 비영리 재단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이하 꽃동네) 소속의 박야고보(본명 박형지) 수녀가 중심이 된 봉사팀이 정성 들여 만든 주먹밥과 따뜻한 야채수프를 들고 광장을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른 1일 저녁(현지시간) 이들에게 특별한 만찬 메뉴가 전달됐다.

잡채와 불고기, 새우튀김을 얹은 야채 볶음밥 등이 담긴 이날 특별식은 한국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준비된 것이다.





봉사팀으로부터 커다란 음식 봉투를 하나씩 받아든 노숙인들은 해맑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뜻의 "그라치에 밀레"(Grazie mile)를 연발했다.

음식 맛을 본 이들의 입에서는 이탈리아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상급 감탄사인 "벨리시모!"(Bellissimo!)" 등의 단어도 흘러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음식 가운데 하나인 불고기는 이곳 노숙인들도 매우 맛보고 싶은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노숙인들이 동양인 봉사팀 주변에 구름처럼 모여든 모습은 성베드로 대성당의 야경을 보고자 광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이색적인 구경거리였다. 일부는 신기한 듯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바티칸 노숙인들의 한가위 만찬은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의 후원으로 이뤄진 것이다. 대사관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년 개천절 즈음에 개최해온 국경일 행사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게 되자, 관련 예산으로 꽃동네 봉사팀과 함께 노숙인에게 우리 음식을 대접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꽃동네팀이 정기 봉사 활동을 하는 날이 마침 한국의 한가위 명절인 점도 고려됐다.



130인분의 음식은 대사관 전속 주방장이 직접 조리했다. 이백만(64) 대사를 비롯한 모든 공관 직원들도 음식 장만에 손을 보탰다고 한다.

대사관 측은 노숙인들이 일반인보다 코로나19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해 1인당 25개의 한국산 마스크와 손 소독제도 제공했다.

이 대사 내외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은 이날 배식 봉사에도 참여해 꽃동네 봉사팀의 손을 가볍게 했다.

실무를 총괄한 김기란 서기관은 "봉사팀과 노숙인들이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서로를 맞이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며 "이처럼 의미 있는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돼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야고보 수녀는 성베드로 광장 노숙인들의 벗이자 동반자로 통한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광장을 찾아 노숙인들과 함께했다.



지난 2월 이탈리아를 강타한 코로나19도 박야고보 수녀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바이러스 사태 이후 현지 다른 봉사단체들이 감염 우려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는 노숙인들과 우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는 예수의꽃동네형제회 소속 현진섭 바르톨로메오 수사신부, 이관우 마태오 수사, 전남현 야고보 수사, 예수의꽃동네자매회에 속한 윤재란·김효정 야고보 수녀 등이 그를 돕고 있다.

박야고보 수녀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난한 이를 홀로 두지 않고 항상 함께 머무른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면서 "많은 분이 도와준 덕에 어느 해보다 마음이 풍요로운 추석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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