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실효성 확보가 관건이다

입력 2020-10-05 16:01   수정 2020-10-05 17:03

[연합시론]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실효성 확보가 관건이다

(서울=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5일 급증하는 나랏빚에 제동을 걸기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마이너스 3% 이내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이 기준을 넘을 경우엔 한도 이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정 건전화 대책 수립을 의무화했다. 정부는 재정준칙 적용 시점을 2025 회계연도로 잡았다. 글로벌 경제 위기나 전쟁, 대규모 재해 등의 긴급 사태 때엔 준칙 적용을 면제하는 등 예외 규정을 두기로 했다. 저성장이 고착하는 가운데 복지, 경기 부양 관련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국가 재정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세수가 정체된 상황에서 모자라는 예산은 빚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이 가속하면 재정이 감당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터키와 우리나라 외엔 없다. 늦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건전 재정 관리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올해 본예산은 작년보다 9.1% 증가한 데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네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 구조가 급속히 나빠졌다. 나라 살림의 실질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18조원에 달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로 치솟았다. 국가채무비율은 작년(38.1%)과 비교해 5.8%포인트나 상승했다. 국채발행이 늘면서 올해에만 국가부채가 106조원 증가했다. 이런 재정 악화는 20여년 전의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국난 극복을 위해 확장 재정은 불가피하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내후년엔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는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이 오는 2045년 99%로 정점에 오른 뒤 2060년에는 81.1%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2040년 97.6%, 2060년엔 158.7%로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 같은 흐름이라면 정부의 낙관적 전망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예측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현재의 부채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해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우려스러운 것은 재정준칙이 너무 느슨해 '무늬만 준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2025 회계연도를 적용 시점으로 했는데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멀리 잡았다.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준칙의 도입을 명문화하되 수량적 한도는 시행령에 위임해 5년마다 재검토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고무줄 준칙이 될 수 있다. 국가적 위기 시 재정준칙의 예외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상황을 위기로 규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경기 둔화' 시에도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재정규율을 침식할 수 있다. 어느 정권이든 정치는 재정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고 이는 국채 찍어내기로 연결된다. 따라서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비율의 상한 준수를 엄격하게 강제하지 않을 경우 재정준칙은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재정준칙을 헌법이나 법률에 못 박고 있다. 독일은 재정적자를 GDP 대비 0.35% 이내, 프랑스는 0.5%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우리의 경제 여건이나 복지 수준 등을 감안하되 실효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조속히 도입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재정은 국가 생존의 최후 보루이자 위기의 버팀목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보건·경제 복합 위기를 맞아 국가 경제와 민생을 지탱하고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재정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하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도 재정 여력이 있었기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자연재해는 물론 경제와 안보 등에서 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개방경제 아래서 국가의 재정 상태는 국제신인도와도 직결된다. 꼭 필요할 땐 빚을 내서라도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하지만 평시엔 재정 방파제를 견고하게 구축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늙은 국가'를 지탱하느라 허리가 휠 미래세대에 빚더미까지 떠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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