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방역 무너지자 메르켈의 질타…'왜 한국처럼 안되지'

입력 2020-11-14 13:07  

[특파원 시선] 방역 무너지자 메르켈의 질타…'왜 한국처럼 안되지'
현지언론 "독일, 방역 모범생 아냐"…다시 한국 등 아시아 방역에 눈길
감염자 4분의 3은 감염원 몰라…개인정보 보호기준 맞춘 코로나앱 제기능 못해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교훈이 아니라 자만심을 얻은 것인가.
독일은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1차 파동 시 유럽의 방역 모범국으로 꼽혔다.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의 방역 모범국 시민들이 어리둥절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아시아를 벗어나면 독일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팬데믹 초기만 해도 방심하던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방역망이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상점과 공공시설의 폐쇄령을 내렸다.
그러나 곧 전열을 정비했다. 당시 독일은 한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의 방역 사례를 찾아봤다. 특히 독일 정부는 지난 4월 한국에 요청해 코로나19 방역 관련 양국 차관급 화상회의를 열어 한국의 방역 모델을 배웠다.
이후 독일 정부 문건에서도 한국을 모범 사례로 언급하며 코로나19 검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독일은 폐쇄 기간에 다른 서유럽 국가와 비교해 시민이 정부의 방역 방침을 잘 따른데다, 신속하게 검사를 확대하면서 급속히 불길을 잡아갔다.
4월 초 6천명대에 이르던 신규 확진자는 6월에는 최저 100명대까지 내려갔다.
지난 5월에는 게이츠재단에서 남편인 빌 게이츠와 공동 이사장을 맡은 멜린다가 코로나19 대응에서 A학점을 받을만한 국가로 한국과 함께 독일을 꼽기도 했다.
방역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칙도 지켜졌다. 애초 독일 보건당국은 한국식 확진자 및 접촉자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비판론이 쏟아졌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한곳에 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칫 시민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커질 수 있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여론을 수렴하고 독일식 개인정보 보호 방식을 감안해 중앙에 시민들의 개인 정보를 집적하지 않는 블루투스 통신 방식의 코로나앱을 만들었다.
독일 당국은 3, 4월만 해도 당장에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다가 통제를 풀어주는 시점부터 대중교통 및 상점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의 백신 기업들이 안전한 코로나19 백신을 신속히 개발할 것이라는 믿음도 퍼져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2차 파동이 오더라도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도 독일 언론에선 상반기 대응에 대한 자화자찬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름 휴가철 이후 감염 상황이 악화하기 시작하다가 10월 이후에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3일 발표된 신규 확진자는 2만3천542명에 달해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최다치를 기록했다. 하루 확진자가 한국의 누적 확진자(13일 기준 2만8천133명)에 가깝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일부터 다시 폐쇄령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감염자 75%의 감염원을 추적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음식점과 문화시설을 문을 닫게 하고 가족 간 모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이상 급속한 확산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이젠 독일이 자랑하던 검사 시스템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검사 대기자가 밀려있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는 겨울철에 매주 최대 300만 건의 검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지만, 현재 한 주간 가능한 검사량은 196만건 정도다.
철저히 공교육 중심의 독일은 학력 격차 발생 등의 악영향을 우려해 학교 문만은 지키고 있지만 이 역시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최근 학생 30만명, 교사 3만명이 격리돼 있을 정도다.


확산세를 막지 못한다면 유럽 주요 국가 중 가장 탄탄한 의료체계도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유가 넘치던 중환자실 병상은 이제 20% 정도 남아있다.
주간지 슈피겔은 13일 '독일의 코로나 정책 실패와 결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 휴가철의 이완된 분위기를 다잡을 의지가 없었고 메르켈 총리마저 여름철에 너무 조용했다면서 "1차 파동 당시 약점을 보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내부 역량에 한계를 느낀 독일은 다시 한국 등 아시아의 방역 체계에 눈을 돌리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5일 코로나19 대응 내부회의에서 한국을 모범 사례로 들며 강하게 질타했다.
지난달 27일 일간 빌트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한국의 모범적인 사례가 독일에서는 기능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독일의 정보보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코로나앱의 효과가 미흡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독일의 코로나앱은 2천200만명이 내려받았지만, 실제 수백만 명만 사용해 사실상 확진자 접촉 경고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슈피겔지는 코로나앱 이용자가 하루 2천200명 정도 감염 사실을 신고했지만, 이는 실제 이용자 가운데 60% 정도만 감염시 신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앱은 출시 초기부터 업데이트 문제로 상당 기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독일 당국이 감염 고리의 추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코로나앱에 대한 메르켈 총리의 비판은 이런 난맥상을 언급한 셈이다.
더구나 코로나앱의 개선은 내년에나 이뤄질 예정이라고 슈피겔지는 전했다.
일간 차이트는 지난 9일 '아시아로부터 배워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독일은 코로나와 싸우는 모범생이 아니다"라며 "대서양의 반대편에 퍼진 이 (모범생) 신화는 서양의 무지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차이트는 아시아에서의 방역이 유교문화 덕분이라는 오리엔탈리즘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서양의 구제불능인 사람들이 가정하는 유교 문화 때문에 아시아에서 방역이 성공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호주와 뉴질랜드 사례만 보더라도 서양의 민주주의 국가들도 성공적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이트는 아시아 국가들이 빠른 조치와 투명한 의사소통을 통해 시민과 신뢰를 쌓았고 방역을 지원하려는 시민의식을 고양했다고 평가했다.
차이트는 한국이 모든 코로나 발생을 마치 형사 사건을 수사하듯 하고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활용된다고 지적하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통해 개선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다수의 시민이 엄격한 기본권 제한을 피하기 위해 사생활의 축소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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