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당원 할아버지의 '만행' 82년만에 손자가 대신 사죄

입력 2020-11-15 20:47   수정 2020-11-15 21:27

나치당원 할아버지의 '만행' 82년만에 손자가 대신 사죄
1938년 유대인 운영하던 철물점 반유대인법 따라 강제로 빼앗아
피해자 손녀와 90분 통화…"인격 훌륭한 분"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나치당원 할아버지를 둔 손자가 유대인 피해자에게 할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과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독일 사업가 토마스 에델만(49)은 연합국이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무너뜨린 지 20여 년 뒤인 1971년에 태어났다.
에델만은 부모님이 1970년대에 이혼한 후,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계 가족사를 잘 몰랐던 그는 지난해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됐다.
나치당원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빌헬름 에델만이 유대인으로부터 철물점을 강제로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후 에델만은 집 안의 문서를 살펴보며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우연히 보게 된 나치 시절 납세신고서에는 할아버지 빌헬름이 1938년 독일 남부 바트 메르겐트하임에 있는 유대인 베냐민 하이델베르크의 철물점을 반유대인 법인 뉘른베르크 법에 따라 강제로 팔게 했다고 적혀있었다.

에델만은 현재 할아버지가 인수한 철물점을 토대로 성장한 가족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에델만은 이 사실을 유전자 계보 웹사이트 '마이헤리티지'(MyHeritage) 연구팀에 전달하고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연구팀은 하이델베르크가 1942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으로 귀화했고, 이스라엘 북부에는 그의 손녀 한나 에렌라이히(83)가 아직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에델만은 에렌라이히에게 편지를 보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에델만은 편지에서 "우리 가문이 당신의 조부모에게 부조리한 행동을 했다면, 이를 책임지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당신에게서 배우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에델만은 "당신이 나에게 얘기를 해준다고 해서 이득 볼 것은 없겠지만, 내가 과거를 이해하고 이를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에렌라이히는 에델만의 제안을 수락했다.
에렌라이히는 에델만에게 할아버지 하이델베르크가 남긴 일기에서 본 빌헬름 에델만의 얘기를 전달했다.
에렌라이히와 에델만은 약 90분간 전화 통화를 하면서 80여 년 전의 일에 관해 얘기했다.
하이델베르크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그는 빌헬름과 사이가 좋았으며, 빌헬름을 "나치당원이지만 인격이 좋고 유대인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가게를 그저 몰수해간 것도 아니었다.
시세보다 낮긴 했지만, 빌헬름은 하이델베르크에게 2만8천500라이히스마르크를 지불했다.
그리고 빌헬름은 하이델베르크에게 반유대인법이 시행될 예정이니 독일을 하루빨리 떠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덕분에 하이델베르크는 1938년 '수정의 밤'(Kristallnacht)을 겪지 않고 팔레스타인으로 피난 갈 수 있었다.
수정의밤은 1938년 11월 9∼10일 나치 대원들이 대대적으로 유대인 상점을 약탈하고 유대교 사원을 불태운 사건을 말한다.

통화를 마친 후 크게 감동한 에델만은 "에렌라이히는 그의 조부모가 부조리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매우 친절했고 나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델만은 "할아버지가 좋은 사업가였을지언정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면서 "할아버지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나치당원이었으며, 당시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제 15살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나치 독일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피해자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나의 조상이었다"면서 "아들도 누군가가 내린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배우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에델만은 에렌라이히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향후 이스라엘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CNN은 전했다.

honk021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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