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도쿄지사 '극장정치'로 압박…스가 이틀만에 '백기'

입력 2021-01-05 14:00  

고이케 도쿄지사 '극장정치'로 압박…스가 이틀만에 '백기'
긴급사태 줄곧 부인하다 방향 전환…"저항할 체력 없을 수도"
효과 관건…"코로나 공포심 없어졌다·이타심에 호소해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을 위한 절차를 밟는 가운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東京都) 지사의 술수에 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한 것은 방역보다 경기 부양을 중시한 스가 총리의 책임이 크지만, 고이케의 이른바 '극장 정치'로 인해 덤터기를 썼다는 불만이 스가 정권 측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고 주간지들이 확인되지 않은 스가 조기 퇴진설까지 쏟아내는 가운데 긴급사태를 둘러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스가의 리더십 부족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 스가 긴급사태 필요 없다더니 고이케 압박에 이틀 만에 백기
긴급 사태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보면 총리관저가 도쿄도에 끌려다니는 양상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긴급사태 선언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서 "오미 (시게루 코로나19대책 분과회) 회장으로부터 '지금은 긴급사태 선언을 할 상황이 아니다' 이런 발언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며 부인했다.
그는 하루 확진자가 4천500명을 넘어 최다 기록을 세운 지난달 31일에는 긴급사태에 관한 질문에 "우선 지금의 의료체제를 제대로 확보하고 감염 확산 회피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응하고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스가는 총리 취임 후 줄곧 긴급사태 선포 가능성을 부인했다.
관방장관 재직 시절부터 경기 부양을 중시한 그는 긴급사태는커녕 여행장려 정책인 '고투 트래블'(Go To Travel)을 일시 중단하는 것조차 마지못해 결정할 정도였다.
고집불통의 스가였지만 고이케 지사의 주도로 수도권 4개 광역자치단체장이 긴급사태 선포를 검토해달라고 2일 공개적으로 요청하자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긴급사태 선언을 검토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코로나19 대응을 놓고 작년부터 고이케와 스가 사이에 신경전이 이어졌는데 고이케가 스가에게 한 방 먹인 셈이다.
TV 캐스터 출신인 고이케는 여론의 동향을 잘 파악하며 극장 정치에 능하다.
극장 정치는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정국을 주도하는 수법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특기였다.
공교롭게도 고이케는 고이즈미가 키운 정치인인 '고이즈미 칠드런' 중 한 명이다.



스가가 선뜻 긴급사태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회견 전날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경제재생 담당상,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후생노동상, 아카바 가즈요시(赤羽一嘉) 국토교통상 등 코로나19 및 경기 부양과 관련된 내각 주요 인사를 불러 1시간 넘게 회의했다.
더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송년회로 물의를 일으키는 등 위기의식이 결여된 자세로 뭇매를 맞았던 스가 총리는 긴급사태를 선언해 분위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의 한 간부는 '(코로나19를) 억제하지 못하면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최가 어려워진다'는 사정도 이번 결정에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은 5일 전했다.

◇ "정부가 흙탕물 뒤집어쓰고 고이케는 책임 회피" 부글부글
스가 정권 내부는 부글거리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나라(중앙 정부)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도쿄도의 책임을 회피하는 흐름을 고이케 씨가 잘 만들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분위기를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말부터 도쿄의 음식점 영업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단축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고이케 지사는 '따르는 가게가 적고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스가는 "도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곤 했는데 고이케 지사가 갑자기 긴급사태를 요청해 일본 정부를 난처하게 만든 셈이다.



고이케는 니시무라 경제 재생 담당상에게 긴급사태를 요청하기 하루 전날 구로이와 유지(黑岩祐治)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사에게 연락해 "면회 일정이 잡혔다. 요청하러 함께 가지 않겠냐"고 권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애초 구로이와는 긴급사태에 관해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 결국 동행했다.
아사히신문은 고이케가 앞서 음식점 영업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제언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쌍방의 무른 인식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한 원인"이라고 논평했다.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면 고이케가 기습적으로 긴급사태 선언을 요청하면서 그의 적극적인 태도가 부각되고 스가 총리는 수세에 놓였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스가 총리가 긴급사태를 요구한 의료전문가나 고이케 지사 등의 '외압'에 밀렸다고 분석하고서 "정권에 저항할 정도의 체력이 이미 없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집권 자민당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 한정적으로 발동하는 긴급사태…효과 불투명
스가 총리가 다소 체면을 구기기는 했으나 긴급사태 선언을 계기로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면 결과적으로는 잘한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관건은 긴급사태 선언의 효과다.
이번에는 작년에 긴급사태를 처음 선포했을 때와 달리 대규모 행사 제한 등은 하지 않고 음식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음식점의 영업시간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긴급사태를 선언하되 경기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인데 그만큼 주민들이 느끼는 경각심이 적을 수 있다.
하마다 아쓰오(濱田篤郞) 도쿄의과대 교수는 "음식점은 지자체가 내놓은 메시지에 익숙해져 버렸다. (영업시간 단축) 요청에 반드시 따르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에 의견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당국의 요청에 강제력을 부여하도록 '신형인플루엔자 등 대책특별조치법'(이하 특조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달 중에 입법을 마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와타나베 쓰토무(渡邊努)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작년 4월 긴급사태 선언에 의한 외출 자제 효과는 8%에 그쳤다.
긴급사태보다 확진자나 사망자 수에 관한 정보가 주는 공포심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효과가 컸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코로나19) 공포심은 봄을 정점으로 약해졌다. 지금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공포심을 지니고 있지 않다. 협력하도록 하려면 정부가 주위에 (코로나19를) 옮기지 말라고 이타심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아사히에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의료 붕괴가 사실상 시작됐고 긴급사태 선언 시점이 이미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확진자 수 변화는 내각 지지율이 석 달 만에 64%에서 40%(마이니치신문 조사 기준)로 급락해 구심력이 약해진 스가 정권의 앞날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됐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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