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핏줄'…"사연 없는 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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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1-07 06:06  

[잘란 잘란]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핏줄'…"사연 없는 아이 없어"

[잘란 잘란]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핏줄'…"사연 없는 아이 없어"
韓 남성들, 신발·봉제공장서 일하며 현지 여성과 2세 낳고 사라져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땅그랑[인도네시아]=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베트남의 라이따이한, 필리핀 코피노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인 아빠와 인도네시아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한인 2세들이 있다.
자카르타 외곽 땅그랑 남부 찌꾸빠(Cikupa) 신발·봉제 공단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들은 상당수가 아빠 없이 자랐지만, 한인사회·기업의 도움으로 하나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찌꾸빠 자택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난 김하진(18)양은 "2019년 전국체전에 태권도 선수로 출전하면서 한국을 처음 갔는데 가을이 정말 좋았다"며 "이 동네에서 같이 자란 한인 2세들을 만나면 나도 '절반은 한국인'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진 양의 엄마 띠라(51)씨는 한국인 남성과 만나 첫째 딸(25), 둘째 하진 양을 낳았지만, 남편이 15년 전 한국에 들어간 뒤 연락을 끊고 양육비도 주지 않아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세 살 때 이후 아빠를 못 본 하진 양은 '아빠가 보고 싶냐'는 질문에 힐끔 엄마 눈치를 살피더니 "그래도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띠라씨는 "그때는 서로 좋아서 (한국인 남성과) 같이 살고, 아이들도 낳았지만, 지금은 보고 싶지 않다. 너무 실망했다"고 힘들었던 시간을 돌아봤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하진 양은 부산에서 경성대 졸업 후 취업한 언니처럼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상 어렵기에, 한인기업에 취직해 먼저 돈을 번 뒤 학업을 이어가길 희망한다.




이어서 인도네시아 여성 피나(45)씨가 한국인 남성과 사이에 낳은 네 딸을 홀로 키운 가정을 찾아갔다.
아이들 아빠가 10여 년 전 가족을 떠난 뒤 피나씨는 개인사업을 꾸려나갔다.
첫째 딸은 한인 신발회사에 취업, 둘째 딸은 인도네시아 의대에 장학생으로 진학, 쌍둥이인 셋째 딸은 승무원, 넷째 딸은 부산 경성대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출국 준비 중이다.
막내딸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들이 내 얼굴과 비슷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경성대 호텔학과 졸업 후 한국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피나씨는 '딸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한다고 하면 어떠냐'고 묻자 "알아서 하라 할 것"이라며 웃었다.



인근의 또 다른 가정은 한국인 아빠가 7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 인도네시아인 엄마가 아들 이재희(21) 군과 쌍둥이 딸 이웰리, 이웰라(18) 양을 키우고 있다.
재희 군은 2013년 한국에서 구순구개열 수술을 무료로 받았다. 그는 "아빠는 좋은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웰리양과 웰라양은 "한국 드라마, K팝 모두 좋다. 한국 이야기를 할 때 나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찌꾸빠에는 1990년대에 한인 신발공장 10여개가 몰려있었다.
당시 한국에 가족을 두고 혼자 이곳 공장에 취직한 한국인 남성 기술자들은 인도네시아 여성과 만나 소위 '두 집 살림'을 많이 차렸다.
주로 40대 한국인 남성과 20대 초반 인도네시아 여성이 같이 살았고, 2세를 낳은 가정은 80가구 정도로 추산됐다.
그러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한인 공장이 줄도산 또는 타지역으로 이전하자 2세 가정도 일부 흩어져 현재 50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이들 50가구 가운데 3분의 1만 한국인 아빠가 현지에 남아있고, 나머지 3분의 2는 아이들을 놔두고 한국으로 들어가 연락을 끊거나, 지병·사고로 사망했거나 인도네시아에서 또 다른 가정을 꾸렸다.



2006년부터 '인도-코리아'(인도네시아-코리아·인코)라고 불리는 이 지역 한인 2세들을 챙겨온 고재천(71) 선교사는 "일본인들은 인도네시아 여성과 아이를 낳은 뒤 본국에 돌아가도 양육비를 철저히 보내는데, 한국 남성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아빠들은 귀국 후 몇 달만 생활비를 보내다 아예 번호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얼굴만 보면 한국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살폈다"고 덧붙였다.
고 선교사는 2007년 '무지개 공부방'을 차려 2세 아이들을 상대로 한글·태권도를 가르쳤고,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한인 기업·사업가, 땅그랑반튼한인회, 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과 매칭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취업까지 주선했다.
그는 "한국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는데, 여기 있는 아이들은 아플 때만이라도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며 "사연 없는 아이가 없다. 그래도, 한국인 피를 물려받아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골목대장은 다 우리 아이들이 했다"고 웃음 지었다.
아직도 고 선교사가 돌봐야 하는 고교 3학년 학생이 6명, 고교 2학년 3명, 중학생들이 남아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후원이 많이 끊겨 상황이 어렵다.
그는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일자리를 구해 달라", "한 학기 등록금만 더 보태달라"는 아이들의 연락을 받았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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