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남아공 토착백인 이해 도움 '보어트레커 기념관'

입력 2021-01-09 08:00  

[샵샵 아프리카] 남아공 토착백인 이해 도움 '보어트레커 기념관'
영국 식민탄압 피해 대장정 나선 보어인 추모…코로나로 관람객 적어 '썰렁'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보어트레커 기념관'(Voortrekker Monument)을 방문하는 날은 비가 내렸다.


지난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근교에 있는 보어트레커 기념관을 박철주 남아공주재 신임 한국대사와 함께 찾았다. 안내는 자신의 선조가 1658년 네덜란드에서 희망봉에 도착했다는 더크 러우 남아공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장이 해줬다.
이번 방문 목적은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남아공 토착 백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어트레커 기념관은 가로, 세로, 높이 모두 40m의 정방형으로 이뤄진 화강암 건물이다.
1835∼1854년 현 남아공 남단 케이프 콜로니에서 영국의 박해를 피해 내륙으로 대장정을 한 보어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1949년 지어졌다. 보어인은 주로 네덜란드계 후손으로 남아공에 정착한 유럽 대륙 출신 백인들을 말한다.
보어트레커는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 비견되기도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어 대장정에 참여한 백인 모자들 상이 맞아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파동이 고조되는 때라 그런지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기념관 안내원인 아니타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2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말했다.
주중에는 중국인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고 주말에는 현지 백인 관람객들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들어가면 정숙을 뜻하는 안내 말 가운데 한자어 '靜'(정)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중국어 안내문이 붙어 있어 중국인 관광객의 존재감을 느끼게 했다.
아니타는 "지금은 관광객이 뚝 떨어진 상황"이라면서 수개월 간의 국경 봉쇄령이 완화돼 관람이 가능한 이후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관람객은 가족단위로 보이는 서너 그룹에 불과했다.
보어트레커 기념관은 일종의 영묘다.


단 보어트레커들의 유해는 이곳에 없고 빈 무덤 대신 '우리는 남아프리카, 너를 위한다'라는 뜻의 문구가 새겨진 네모 관 형태의 화강암 제단이 놓여 있다.
해마다 12월 16일 정오에 돔 천장의 구멍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내려와 정확히 이 문구 위를 비춘다. 12월 16일은 1838년 블러드리버 전투에 참여한 보어인들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나오는 장면과 같이 빛을 이용한 조명으로 특정일에만 햇살이 특정 지점에 비취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이 건물은 고대 이집트 건축양식을 참고했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세계 최장의 대리석 부조물(frieze)이 사면으로 둘러 있다.

소달구지를 끌고 자유를 위한 대장정에 나선 당시 보어인들과 성경에 손을 얹고 엄숙히 선서하는 장면 등이 돋을새김 돼 있다.


미국 서부 개척사에 나오는 마차는 말이 끄는 데 비해 여기는 황소들이 끌었다. 속도는 느린 대신 힘은 더 좋았을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니 사방이 툭 터져 프리토리아 일원을 둘러볼 수 있다. 꼭대기 내부 아래로도 지하까지 툭 터져 조금은 아찔했다.

지하에는 소달구지 마차와 대포, 총기류, 대장정 당시 쓰인 살림살이 도구 등이 전시돼 있다.

주로 백인들이 찾는 가운데 흑인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어 왜 여기를 찾게 됐느냐고 물어봤다.

알고 보니 남아공 현지인이 아니라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온 애나(20)라는 이름의 여학생이었다.
관광차 왔다는 그는 "무슨 동기에서 대장정에 나섰는지를 보고 있다"면서 "당시 대장정이 고통스러웠겠지만 흥미로운 점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장소를 옮겨 인근 남아공 헤리티지 재단을 찾았다.


큐레이터인 요한 넬이 역사 전시물 설명을 해줬다.
그는 시작을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했다.
1899∼1902년 남아프리카전쟁 혹은 앵글로-보어 전쟁이라 알려진 것부터 풀어갔다.
소략하면 보어인들이 지금의 케이프타운 영국 식민지에서 쫓겨 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 내륙 쪽으로 왔지만, 영국 식민지배자들과 이해충돌이 심해져 전쟁이 터졌다.
당시 대영제국 진영에 맞서 보어인 쪽에는 러시아, 프랑스 등이 가담해 사실상 1차 세계대전 전초전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대영제국은 보어인들을 무차별 진압해 집과 초지를 불사르고 가축들을 몰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또 근대 전쟁사상 처음으로 강제수용소를 세워 전쟁포로 등 약 2만6천 명이 이곳에서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사망했고 여기에는 상당수 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됐다.
이후 1910년 두 개의 보어인 공화국과 두 개의 영국 식민지로 구성된 남아프리카연방을 거쳐 1961년 영연방 탈퇴 등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남아공이 출범했다.
아울러 백인과 문화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현지 흑인들과 섞이지 않고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시행됐다.
넬 큐레이터는 "대영제국에 짓눌린 피식민의 역사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흑인에 대한 소수 백인들의 두려움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식민지로 있을 때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한글을 못 쓰게 했듯 학교에서 아프리칸스어 사용을 금지했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보어트레커 기념관 방문은 우리의 피식민 경험에 비추어 남아공 토착 백인들의 역사적·심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그치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