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신냉전 속 손짓하는 中…'긴 계산서' 내밀어야

입력 2021-01-30 07:07  

[특파원 시선] 신냉전 속 손짓하는 中…'긴 계산서' 내밀어야
미중 전략경쟁·기술전쟁에 한국 중요성 커져…"우리 급할 것 없다"
시진핑 문화교류 강조하지만 '사드 보복 한한령' 그대로…정상화 요구 관철해야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간의 통화가 이뤄졌다.
외교가에서는 한중 양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보다는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더욱 주목했다.
문 대통령이 갓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통화를 추진하던 상황에서 시 주석이 선수를 쳐 한국 끌어안기에 나선 모양이 연출된 탓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통적 동맹을 규합, 대중(對中)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한 터여서 국제사회에서는 시 주석이 '약한 고리'인 한국 포섭에 먼저 나섰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지는 "시진핑-문재인 간 통화는 중국이 조 바이든 신임 미 행정부가 주도하는 민주사회의 반중 동맹을 좌절시키기 위해 한국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시 주석이 가장 먼저 통화를 한 미국의 핵심 동맹국 정상이라는 점, 이번 통화가 중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 점 등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시 주석이 한국에 먼저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은 중국에 한국의 중요성이 상당히 커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든 시대에도 미중 신냉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자국에 최소한 중립 태도를 취해 주길 기대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작년 11월 서울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한국 측이 중한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초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이 만약 자국이 '민감하다'고 간주하는 사안을 '부적절'하게 다룬다면 양자 관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에둘러 던진 것이다.
잠복 중인 민감한 현안이 적지 않다. 가령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동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새로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외신에는 중국과 가까운 일본이나 한국이 후보군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미중 기술전쟁을 계기로 또다른 측면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산업 가치사슬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경우 중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이 알게 된 것이다.
중국은 한국에서 반도체와 화학 원료 등 많은 중간재를 수입한다. 특히 스마트폰과 PC 등 많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D램의 경우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에 크게 의존한다.

미중 기술전쟁이 격해지면서 산업 사슬 안정화가 중국의 국가적 전략 목표로 부상했다. 중국 각 지방정부는 작년부터 관내 한국 기업들을 초청해 관계를 다지는 행사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
중국이 작년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한국에 먼저 '기업인 신속 통로'를 열어준 것도 이런 흐름과 관련이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우리 측에 크게 생색을 내며 '신속 통로'를 열어준 곳들은 시안(西安) 삼성반도체 공장 등 자국이 산업 사슬 유지 차원에서 안정적 가동이 절실히 필요한 곳들이었다.
중국이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한국을 냉대하다 못해 갖은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보복'에 나섰던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한중 양국 간의 처지가 크게 뒤바뀐 셈이다.
최대 교역국이자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한국에 중요한 외교적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몸값'이 높아진 측면이 있은 만큼 미묘한 미중 전략 경쟁기에 서두르지 말고 대중 관계를 신중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간 사드 배치 후 상처 입은 한중 관계를 일거에 복원하고자 시 주석의 방한을 오랫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또 문재인 정부는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북핵 문제 해결에 일정한 동력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 측이 매달리듯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에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한 우리 외교관은 "지금 몸이 달아 있는 것은 중국이어서 우리가 시 주석 방한에 목을 맬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며 "우리 측이 현재의 사정을 십분 유리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측이 이제는 중국에 '긴 계산서'를 청구해야 할 때다.
단연 최우선 정상화 과제는 2017년 시작된 사드 보복의 결과물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확실하고도 완전하게 푸는 것이다.
마침 시 주석이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관계 개선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문화 교류 강화'를 제시했다. 시 주석의 올해 방한이 구체적으로 추진된다면 중국이 한한령을 일부 완화하면서 '생색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데 이 수준을 넘어 '완전한 해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한한령으로 한국이 크게 타격을 본 분야로는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 산업, 게임 산업, 여행 산업을 들 수 있다.
중국은 한류(韓流)의 최대 해외 시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문화가 큰 인기를 끌던 지역이다.
하지만 중국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인 아이치이(愛奇藝)의 한국 드라마 코너에는 2016년작 '태양의 후예' 이후로 업데이트가 멈춰 있다.


중국 광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한국 스타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게임업체들은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가 나오지 않아 지난 4년여간 수조원대 매출 손해를 봤다. 최근에야 극히 일부 한국 게임의 판호가 나왔지만 향후 지속해서 허가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여러 계기마다 중국은 시혜를 베푸는 듯 극히 일부의 제한을 푸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
중국이 우리나라 문화가 가로막은 사이 중국 문화는 한국으로 자유롭게 유입된다.
한국에서는 중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철인왕후'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중국 업체들의 게임 매출도 날로 커지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틱톡도 중국 서비스다. 반면 중국에서 한국의 대표적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만리방화벽에 막혀 '먹통'이고 포털 다음도 접속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시 주석이 자기 입으로 '문화 교류 강화'를 천명한 만큼 차제에 비정상적 상황을 확실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 한국 방송업계 관계자는 "전 문화 분야에서 사드 보복이 풀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간 우리 정부가 이 부분에서 중국에 강력한 목소리를 냈는지 모르겠다"며 "문화 교류의 일방적인 빗장이 하루빨리 풀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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