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 문학상 켈러 "한인 외할머니 옛이야기가 내 상상력 근원"

입력 2021-02-04 09:45  

[인터뷰] 미 문학상 켈러 "한인 외할머니 옛이야기가 내 상상력 근원"
미 최고 권위 아동·청소년 문학상 '뉴베리 메달' 100번째 수상자 영예
외할머니가 들려준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근원
정체성 혼란, 가족 사랑으로 승화…"한국, 볼거리·즐길거리 너무 많아"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지금도 하와이에 살고 계신 (한국인) 외할머니와 생일까지 같다. 내 인생에 영향력 있는 존재이고,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한국 전래동화 속 호랑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청소년 문학상 '2021 뉴베리 메달'(Newbery Medal)을 거머쥔 자칭 '4분의 1 한국인' 테이 켈러(27·한글명 태 켈러).
그는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한 이야기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옛이야기 '해와 달'(해와 달이 된 오누이)을 손꼽았다.
하와이 태생으로 현재 시애틀에 사는 켈러는 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나와 여동생에게 '해와 달'을 오누이 이야기가 아닌 자매 이야기로 바꿔 들려주셨고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호랑이를 물리치고 달아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년이 된 후 호랑이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다"면서 "'배고픔 외에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호랑이는 뭘 원했을까' 하는 상념에 젖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 상상력은 켈러가 뉴베리 메달 수상작 '(가제)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When You Trap a Tiger)을 창작하는 동기가 됐다. 미국도서관협회가 1922년부터 매년 1명씩 수상자를 내는 뉴베리 메달은 '미국 아동·청소년 도서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뉴베리 메달 100번째 수상자가 된 켈러는 "소식을 듣고 기쁘고 들떠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책에 공감해 준 심사위원단이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내 글에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준 엄마와 어릴 적 다양한 한국 전래동화를 들려준 외할머니께 특히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뉴베리 메달 수상을 통해 더 많은 어린이가 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뉴베리 메달 수상작은 미국 초등학교와 공립도서관의 권장도서 목록에 오른다.



켈러는 총 304쪽 분량의 이 책을 처음 구상해서 탈고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면서 "퇴고를 20차례나 했다. 긴 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집필 동기에 관해서는 "나의 가족사를 한국 역사에 연결 지어 미국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 책이 '가족 사랑의 의미'와 '세대를 거치며 삶이 변화하는 방식' 등을 다루고 있다면서 "독자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고 기대했다. 이어 한글 번역판이 올 4월 출간된다며 "한국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독일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켈러는 미국인에게 흔치 않은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의 올해 수상자 명단에서 연합뉴스의 눈길을 끈 것도 바로 그의 이름 표기(TAE)였다.
그는 '테이터 탓'(Tator Tot·으깬 감자튀김)의 '테이'처럼 발음한다면서 부모님이 외할머니의 이름 '태임'을 줄여 지어주셨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5분 거리에 살았던 하와이 이민 1세대 외할머니는 작가 켈러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켈러의 생각 속에 한국 전래동화를, 몸에는 흑미밥과 김치를 채워주는 존재였다. 켈러는 비빔밥, 갈비, 찌개 등 한식을 모두 좋아하지만, 할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셨던 냉면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는 "지금도 하와이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와 생일까지 같다. 내 인생에 영향력 있는 존재이고,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고 부연했다.
켈러의 여동생 이름은 '선희'. 그는 "동생을 낳았을 때 부모님이 몇 개의 후보명을 제시했는데 내가 '선희'를 뽑았다"면서 "동생도 나처럼 한국식 이름을 갖기를 원했다"고 소개했다.



켈러의 어머니는 소설 '군 위안부'(Comfort Woman·1997)로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한 노라 옥자 켈러(54)다.
켈러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전업작가가 되는 꿈을 꿨다고 밝혔다.
"다섯 살 때부터 글 쓰는 엄마 옆에 앉아 동물 봉제인형들을 주인공 삼아 그림책을 만들곤 했다. 인형들이 '누가 샌드위치를 먹었는지', '왜 신발에 껌이 붙었는지' 등 미스터리를 파헤쳐가는 이야기였고, 엄마 칭찬을 들으며 그 책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혼혈로서 정체성 혼란도 겪었다.
켈러는 "각각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음식을 먹고, 전통과 역사를 배우며 자랐다. 분명 놀라운 축복이다. 하지만 때로는 힘들었다. 가끔은 내가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고, 어느 집단으로부터도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정체성과 내 가족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고민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음에 외려 감사한다.
켈러는 고교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주 리버럴아츠 칼리지 브린모어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뉴욕 출판업계에서 일했고 2018년 첫 작품 '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The Science of Breakable Things)을 발표했다. 현재는 남편과 함께 시애틀에 살면서 다음 작품을 쓰고 있다.
그는 "내년에 2권의 책이 나온다"며 "한 권은 집단 괴롭힘(bullying)과 용서, 외계 생명체 탐구를 다룬 이야기이고, 다른 한 권은 서구 전래동화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삶과 문화를 반영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수정·보완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켈러는 "한국에는 두 번 가봤다. 서울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너무나 많은 놀라운 곳이었지만,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도시는 부산"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나면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켈러의 진솔하고 섬세하고 유쾌한 답변은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chicagor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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