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부끄러운 역사는 잊고 싶어하는 일본

입력 2021-02-06 07:00  

[특파원시선] 부끄러운 역사는 잊고 싶어하는 일본
도쿄도 정원미술관 방문기…난징대학살은 금기어?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도쿄도(東京都) 미나토(港)구에 있는 정원미술관은 일본의 왕족이었던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朝香宮鳩彦)의 저택이었다.
1933년에 지어진 이 저택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1947년 일본 정부가 임차해 외무상 공관, 영빈관 등으로 사용하다가 1983년 도쿄도 정원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아르데코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저택은 그 자체로 미술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도쿄도 지정 유형 문화재 1호이기도 하다.
필자는 최근 이 미술관을 방문해 일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일본식 정원에서 산책도 했다. 자연스럽게 화려한 미술관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의 옛 주인에게 관심이 갔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 영국, 중국어로도 제작돼 미술관에 배치된 팸플릿에는 야스히코가 파리에서 생활한 후 이 저택을 건설했으며, 1947년 왕족에서 제외돼 저택을 떠났다고 간략하게 기술돼 있었다.
왕족에서 제외돼 자신의 저택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궁금했지만, 팸플릿에는 설명이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야 그가 난징대학살을 일으킨 일본군 부대(상하이파견군)의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야스히코는 왕족에서 제외됐고 공직에서도 추방됐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때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당시 70만명의 난징 시민 가운데 30만 정도가 숨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간 피해를 본 여성도 2만∼8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난징대학살 사건으로 다수의 일본군 장교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따르면 상하이파견군 사령관이었던 야스히코도 포로 살해 명령에 관여한 혐의로 전범으로 지명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왕족이어서 전범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왕족에게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게 당시 미국의 방침이었다고 한다.
야스히코는 자신의 저택을 떠나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에 있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겨 골프를 즐기며 생활했고, 많은 골프 클럽의 회장 및 명예회장을 맡았으며, 천수를 누렸다.
도쿄도 정원미술관 홈페이지를 자세히 살펴봐도 야스히코의 이런 이력에 대한 설명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야스히코에 대한 설명에 인색한 이유는 난징대학살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부끄러운 역사를 잊고 싶어 하는 일본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난징대학살 사건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함께 일본 우익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역사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2017년에 발간된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대학살을 언급했다가 우익들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대사 중에 난징대학살과 관련해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 10만~40만명을 죽였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일본 우익 중에는 난징대학살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우익의 공격에 "역사를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일본에는 잘못된 역사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진정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ho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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