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도박 아닌 게 맞나요?

입력 2021-02-06 08:00  

[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도박 아닌 게 맞나요?
장난감 뽑기에서 따와…현금화 가능하고 확률 불투명해 사행성 우려↑
韓게임 생존 도구였으나 지속가능성 의문…게임법 개정 과정에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도박 아니야?"
게임에 돈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설명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사실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보다는 옛날 문방구 앞에 흔하던 '장난감 뽑기'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가챠'(ガチャ)라고 한다.
장난감 뽑기 기계를 가리키는 '가챠폰'(ガチャポン)에서 온 말이다. 뽑은 캡슐을 여는 소리의 의성어로, 한국어로 옮기면 '철컥, 퐁!'에 가깝다.
문방구 앞 장난감 뽑기를 두고 도박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게임에 옮긴 것뿐인 확률형 아이템은 왜 도박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그 이유는 '일확천금이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장난감 뽑기 캡슐에서 나오는 장난감은 비슷비슷하다. 500원을 넣고 돌리면 그 값에 상응하는 장난감이 나온다.
그런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는 이론적으로 몇만∼몇십만원을 써서 몇백만∼몇천만원짜리 아이템을 뽑을 수 있다.
게임사들은 게임 아이템의 현금화를 금지하지만, 이용자들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활발하게 아이템을 사고판다.
아이템의 현금화가 사실상 가능하다는 것이 '도박' 이미지로 이어지는 첫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게임사는 아이템 거래가 흥행 요소가 되기에 침묵한다.
이런 문제는 보통은 수면 아래 잠겨 있다.
아이템에 도박처럼 수백만∼수천만원을 붓는 사람이 많지 않고, 표면적으로 자발적인 형태를 띠기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적도 별로 없다.
그런데 모바일게임이 주류가 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남녀노소 게임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는 분위기다.
최근 게임사 앞의 '트럭 시위'가 하나의 징조로 보인다.
트럭 시위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으로 게임사의 '불통'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시위의 배경에는 대부분 과도하고 불투명한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포함돼있다.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 얘기를 꺼내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생존 도구를 빼앗길 것 같으면 사람도 으르렁거린다.
한양대 연구진의 '온라인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태생적으로 독특하게 성장하면서 확률형 아이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1970∼1980년대에 게임을 처음 산업으로 만든 일본과 미국은 아케이드(오락실) 게임과 콘솔(가정용 오락기) 게임 시장을 빠르게 선점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온라인 게임이었다.
좁은 국토와 초기 IT업체들의 분투 덕에 빠르게 뿌리내린 인터넷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정기 점검과 지속적인 새 콘텐츠 업로드가 필요하기에 패키지 게임과 달리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 등 초기 온라인 게임은 정액제(pay to play)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매월 인터넷비에 게임 회원비까지 치러야 하는 정액제는 청소년의 유입을 막았다.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넥슨이었다.
2001년 게임 '퀴즈퀴즈'가 세계 처음으로 '부분 유료화'(free to play) 모델을 도입했다.
게임은 무료로 제공하고, 캐릭터를 꾸미거나 강화하는 아이템을 유료 판매하는 첫 사례였다.
넥슨은 2004년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도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후 한국·일본의 여러 종류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고 여러 형태로 발전시키면서 확률형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의 주요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일렉트로닉 아츠(EA) 같은 글로벌 게임 기업도 확률형 아이템을 주 수입원으로 활용한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살아남으려고 손에 쥐었던 확률형 아이템은, 지나고 나서 보니 청동기 사이에서 찾아낸 철기 무기였던 셈이다.

메이플스토리 때 말 그대로 장난감 뽑기 형태였던 확률형 아이템은 16년이 지나는 동안 많이 바뀌었다.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0.001%가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이중·삼중 뽑기 구조에 빙고 판까지 완성해야 하는 '컴플리트 가챠'도 유행하고 있다.
이를 규제하는 해외 당국들은 확률형 아이템이 고도화될수록 확률을 알기가 어려워지고, 게임 본연의 재미보다 '뽑기'에 열중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불투명한 확률, 가치가 큰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 현금화가 가능한 아이템 시장의 존재 등 여러 요인이 섞여 게임을 도박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게임사 관계자들은 어느 한 게임사가 나서서 바꾸기는 어려운 구조가 이미 뿌리를 내렸다고 푸념한다.
MMORPG는 개발에 3∼4년이 걸리는데 수익은 출시 직후에 가장 많이 나는 점, MMORPG가 아니면 투자를 받기 힘든 현실, 모바일게임은 앱 마켓 순위에 오르지 못하면 망한다는 압박 등 때문에 '뽑기의 굴레'는 여전히 단단하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수익 구조가 한국 게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는 우려 역시 업계에 퍼져 있다.
사업보다 개발에 힘을 싣는 일부 게임사에서는 아이템 뽑기 중심 MMORPG에서 스토리 중심 AAA급 콘솔 게임으로 방향타를 돌리는 움직임이 보인다.
컴플리트 가챠처럼 해외 규제가 늘어나는 일부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정부도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법제화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입법부라는 공론장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정말 괜찮은 모델인지 꼼꼼히 살필 때가 왔다.
한국 게임이 앞으로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은 어떤 것일지 제대로 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hy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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