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주치의가 본 변희수하사 비극원인은 사회적 편견·혐오

입력 2021-03-22 06:00   수정 2021-03-22 08:32

성소수자 주치의가 본 변희수하사 비극원인은 사회적 편견·혐오
이은실 교수, 국내 1호 대학병원 '젠더 클리닉' 개설…의대서 성소수자 이해 강의도
"생식 기능 잃어야 성별 정정 가능케 하는 건 '인권유린'"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이 투여받는 호르몬제는 건강에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성소수자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사회적 편견과 혐오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있어요."
2014년 국내 대학병원 1호 젠더 클리닉을 설치해 운영 중인 이은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말이다.
'성소수자 주치의'답게 이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앨라이'임을 환자들에게 알리는 표식인 무지개색 배지를 흰색 가운에 달고 있었다.

젠더 클리닉 개설 당시에는 환자가 20명 안팎에 불과했지만,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2018년 여름부터 내원객이 늘어나 현재 누적 환자수가 230여명에 달한다.
젠더 클리닉에서는 성별 불일치감·위화감(gender incongruence·dysphoria)을 느끼는 것으로 진단받은 트랜스젠더들을 대상으로 호르몬 투여를 시행한다. 예컨대 생물학적 여성에게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면 목소리가 낮아지고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 교수는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외과적 수술을 받길 원한다는 오해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반적으로 생식기 제거술 등 불임 수술을 받아야만 성별 정정이 가능한 국내 환경을 비판했다.
그는 "외과적 수술을 하고 싶은 환자들도 있지만, 호르몬제 투여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보험도 안 되는 비싼 수술을 해야 다른 성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생식 능력을 잃어야만 법적 성별을 바꿔주는 건 인권유린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9년부터 순천향대병원에서 '인간사랑 환자사랑'이라는 주제 아래에 '성소수자 세션'을 추가했다. 의과대학에서 성소수자 환자 진료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 교수는 강의를 통해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가 비성소수자와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환자로서는 특수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의대생들에게 이들을 어떻게 존중하며 진료해야 할지 교육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시작 단계이기에 이마저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트랜스젠더 수술 및 시술에서 다학제적 협력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생식기 재건 및 절제 수술에는 성형외과·비뇨기과·산부인과가 협력해야 하고, 호르몬 치료를 할 때는 내분비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또 여성 생식기를 만들 때는 대장을 활용하기 때문에 소화기내과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 이해 '불모지'인 국내 의료계에서 이 교수는 어떻게 이런 분야를 개척하게 됐을까.
그는 "2008년쯤 우연히 태국에서 수술받은 트랜스젠더 환자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막연히 더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성소수자 건강 관련 학술대회가 열려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분들 섭외에 나섰을 때 이런 분들이 믿고 다닐 수 있는 병원이 전무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분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음성적으로 호르몬 약을 구하고, 병원에 가면 거부당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내분비 전공이기도 하니까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2016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젠더 클리닉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성별 불일치감·위화감을 느끼는 환자 중 만 18세 미만 소아를 대상으로 진료를 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젠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지역 심리상담가들이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의 소아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6개월에 한 번씩 상담한다. 이중 많게는 65%가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는 쪽으로 정체성을 찾는다.
소아 젠더 클리닉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사춘기 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성찰할 시간을 확보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본 가장 어린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성별 불일치감을 느끼는)트랜스젠더 환자는 만 14세였는데, 그때면 이미 2차 성징이 나타나서 성인이 된 후에 가슴 절제술을 선택했다. 만일 2차 성징 전에 사춘기 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했으면 외과 수술을 거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트랜스젠더가 느끼는 성별 불일치감·위화감은 정신과 치료로 해결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의학적으로 명백한 오류"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비성소수자와 동등한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혐오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며 "고(故) 변희수 하사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게 하려면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ke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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