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살아 있는 유산'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재단

입력 2021-04-02 08:00  

[샵샵 아프리카] '살아 있는 유산'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재단
초대 남아공 진실과 화해 위원장 가치관 전파…"한국 진실·화해위와 협력 용의"



(케이프타운=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을 얘기한다.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초대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1996∼1998년) 위원장을 지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얘기다.
그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겠다면서 79세이던 지난 2010년 모든 공적 활동에서 은퇴했다.
이 때문에 이번 케이프타운 방문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고 서면 인터뷰조차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데스몬드-레아 투투 리거시(유산) 재단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박철주 주남아공 한국대사 등과 함께 투투 재단을 방문해서 재단 대표와 2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재단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
건물 입구에 투투 대주교 부부가 사이좋게 앉아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피유시 코테차 재단 대표(CEO)는 "투투 대주교께선 겸손하고 관대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재단이나 단체를 전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허용했지만 정작 자신의 유산에 대해서는 잘 챙기지 않으셨다"라면서 남아공의 대표적 양심인 투투 주교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유산을 후세에 전략적으로 전파하고 확산하는 일을 재단이 한다고 말했다.
코테차 대표는 지금 학생들은 원로들을 잘 몰라서 마땅히 존경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정상인 것처럼 가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재단 CEO실 매니저인 제이콥 메이르 박사는 왜 살아 있는 인물에 대해 유산을 말하냐고 하자,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아이콘인 그의 가치를 젊은이들과 공유해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테차 대표는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부패 조사 위원회 출두 명령도 거부한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재단이 단순히 투투 대주교를 기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현재도 그의 리더십과 가치를 살리기 위해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코테차 대표와 메이르 박사는 한국에서 이날 마침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본격적 활동에 들어간 것과 관련, "우리들도 좋은 협력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한국 진실화해위와 기꺼이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투투 대주교는 진실과화해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내면서 '우분투' 정신에 기반해 가해자 측에서 진실을 말하고 피해자 측에서 용서를 통해 화해하는 방식으로 흑백 화합에 기여했다.
그는 재단 내 전시된 글에서 우분투에 대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 사람이다"라면서 "그건 (서구에서 데카르트의 말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식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속해 있기 때문에 사람이다. 나는 참여한다. 나는 나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재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공평 분배에 목소리를 내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시의 진실을 얘기하는 자리를 추진하고 있다고도 했다.
메이르 박사의 안내로 구내를 둘러보는데 건물 바깥 구석에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가 보였다.

투투 대주교도 정원 일을 좋아해 인근의 유서 깊은 식물원에서 가져다가 직접 심은 것이라고 했다.
'명상 구역'이라는 곳도 있는데 메이르 박사는 영국 성공회 출신인 투투 대주교가 초교파·초종파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투투 대주교는 같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도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재단은 오는 10월 7일 투투 대주교의 90세 생일을 앞두고 9천만 랜드(약 69억 원) 모금에 나서는 등 이곳에서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다.
1811년 세워져 영국 식민지배 유산으로 2번째로 오래된 건물이라는 재단 건물은 당초 곡물 창고, 여자 죄수 감옥, 흑인 노예제 철폐 등과 관련된 유서 깊은 곳이다.
10개에 달하는 전시 공간들이 건물 안에 돌아가며 있었다.
박 대사는 내년 한-남아공 수교 30주년을 맞아 재단과 전시 등 협력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메이르 박사가 우리 일행에게 보물 창고를 보여준다면서 사진은 찍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심스레 열쇠를 열고 들어간 공간에는 다름 아니라 10칸에 달하는 캐비닛 틀에 담긴 투투 대주교의 연설과 기록물, 음성 녹음 이외에 각종 상패 및 세계 각지에서 수령한 선물 등이 있었다.
메이르 박사는 투투 대주교의 기록물 등을 다 디지털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는 대형 사진은 양해를 얻어 촬영할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 시내 입구 간선 도로변에는 두 위인의 대형 사진이 건물 벽면에 걸려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투투 대주교의 사진이 더 뚜렷하고 옷도 컬러풀하다.
가이드 안내에 따르면 그 컬러는 케이프타운을 비롯한 남아공의 다양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투투 대주교는 수십 년간 케이프타운을 근거지로 사역하며 런던, 제네바 등 전 세계를 누볐다.
직접 인터뷰를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재단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인품과 사상의 실마리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1998년 남아공 TRC 활동 종료에 관한 케이프타운발 외신 기사를 전한 후 23년 만에 관련 현장을 직접 방문한 셈이 됐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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