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4명 배출한 '권력의 산실' ENA 내년 해체

입력 2021-04-09 05:39  

프랑스 대통령 4명 배출한 '권력의 산실' ENA 내년 해체
ENA 졸업한 마크롱 폐교 결정…'공공서비스연구소'로 대체
사회불평등 해소 촉구 '노란 조끼' 시위 약 2년 만에 결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권력으로 이어지는 길, 성공의 보증수표 등이라 불리며 프랑스를 이끄는 최상위층 공무원을 배출해온 국립행정학교(에나·ENA)가 2022년 문을 닫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오후 ENA를 폐지하고 '공공 서비스 연구소'(ISP)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관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고 프랑스앵포 방송,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발표에 앞서 주재한 고위공무원 대상 화상회의에서 새로운 연구소는 여전히 양질의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하겠지만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라스부르에 본부를 둔 EN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나치가 점령했던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샤를 드골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1945년 10월 개교한 소수정예 특수대학 '그랑제콜' 중 하나다.
마크롱 대통령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프랑수아 올랑드 등 전직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현 정부를 구성하는 장 카스텍스 총리,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부 장관,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ENA 출신이다.
재계를 보면 베르나르 라티에르 에어버스 공동 창립자, 장시릴 스피네타 전 에어프랑스-KLM 최고경영자(CEO), 앙리 드카스트르 전 AXA CEO, 기욤 페피 전 프랑스철도공사(SNCF) 사장 등이 있었다.



애초 ENA는 신분, 배경과 관계없이 공무원을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문을 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 중심부를 ENA 출신이 꿰차다시피 하면서 평등을 구현하겠다는 취지는 빛이 바랬다.
ENA 재학생 중 이른바 특권층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다. 일간 르파리지앵은 "ENA 학생 중 1%만이 아버지가 노동자 계급이라는 무자비한 수치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며 ENA가 품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꼬집었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필기, 면접시험을 통과하면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신분이 주어진다. 2년간 실무 위주 수업을 마치고 졸업할 때는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워 차례대로 가고 싶은 부처를 골라서 간다.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은 주로 국참사원, 회계감사원, 재경부 산하 재무감사관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ENA를 졸업하면 일정 기간 정부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고, 이 기간을 마치고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으로 옮기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경제 부처에서 일하다가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적을 옮겼다.



2002∼2004년 ENA를 다녔던 마크롱 대통령이 모교를 폐교하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놓은 배경에는 2018년 말∼2019년 초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며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노란 조끼' 시위가 있다.
노란 조끼 시위는 2018년 11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고 도심 곳곳에 모여 정부의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크롱 정부 정책 전반을 비판하는 시위로 확대됐다.
해가 바뀌어도 시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2019년 4월 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소득세를 큰 폭으로 인하하는 한편 ENA를 폐지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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